거창유지, 그들은 누구인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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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유지, 그들은 누구인가? # 1
  • 편집부
  • 승인 2015.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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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균 역사 칼럼 - ② >

# 1. 지역유지의 기원과 성격 - 친일파로 출발한 거창유지



지역유지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정주환 군수시절 지역유지와 극단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경남일보 2014.8.11.)라든지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자임하는 지역유지’(매일경남뉴스 2015.6.10.)라는 신문기사가 그 사례이다.

지역유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역에서 이름이 나 있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권력과 밀착된 토착세력을 가리킨다.

지역유지는 양면성을 지녔다. 그들은 지역발전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과 결탁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토호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2011년에 조직된 ‘거창법조타운유치위원회’를 거창유지 단체로 볼 수 있을까?

유치위원회의 구성 인물과 활동 방식은 일제강점기 거창유지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지역유력자로 구성, 지방권력과의 밀착, 지역발전을 내건 시설유치운동, 지역민 동원, 중앙관서 청원 등의 모든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위의 신문기사로 미루어보면 유치위원회를 지역유지 단체로 보는데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현재 교도소 유치를 둘러싸고 거창군수·지역유지와 지역민은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다.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지역유지와 지역민들 사이에 이처럼 첨예한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없었다. 거창 역사 초유의 일이다. 어떻게 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거창유지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필자는 이 연재 글에서 거창유지의 기원과 활동, 인물과 단체, 그 성격과 본질을 규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역갈등의 뿌리와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거창유지의 기원은 언제일까? 지역유지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등장했다. 일제는 군청과 경찰서에 항상 요주의인물 명부와 지역유지 명부를 비치해 두었다. 요주의인물은 독립운동가이고 지역유지는 일제의 지배에 협력하는 인물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면서 조선인 중 재력가, 명망가들을 협조세력으로 끌어들여 특전을 제공하고 그들을 지역유지라고 불렀다.

유지(有志)라는 용어 자체가 “유우시(ゆうし)”라는 일본 말에서 온 것이다. 곧 한국에서 지역유지는 일제의 지배에 협력했던 지역 유력자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거창유지의 단초는 거창지방위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위원회는 1907년~1911년까지 활동했던 일제 협력기관이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지방위원회는 한일합방 전후기 일제의 세금징수를 돕고 민심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거창지방위원회 회원은 모두 27명이었으며 거창면(현재 거창읍) 이우형(李愚亨)과 신준근(愼準根)은 대표로 경상남도지방위원회에 참가하였다. 그 밖의 거창지방위원은 다음과 같았다.



동부면 하리(현재 거창읍 중앙리) 정태균, 우택구, 웅양면 이현원, 산포 이준식, 이준악, 적화면 송산 유진팔, 고제면 산양 유동석, 주곡면 오류동(현재 주상면 내오리) 이현희, 모곡면(현재 거창읍 월천) 동변 이정봉, 사동 김영기, 죽동 표정준, 서변 김성장, 갈지면(현재 거창읍 가지리) 지내 변관수, 천내면 임리(현재 거창읍 상림리) 정용하, 천외면 중리(현재 거창읍 대평리) 신종삼, 장팔리 김종우, 남흥면 평성(현재 남상면 월평리) 이진우, 고천면(현재 남상면) 둔동 김기현, 청림면(현재 남상면) 대산 김성범, 무등면(현재 남하면) 대야촌 정면석, 가서면(현재 가조면) 동례촌 어재연, 상가면(현재 가조면) 부산 김채환, 가동면(현재 가조면) 병산 변우서, 변안수, 가북면 몽석동 박무흥 등.



지방위원회공함
▲ 거창지방위원 공함 (경남일보 1910.11.17) - 거창지방위원회는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협조한 최초의 거창유지단체였다.




거창지역위원들은 대체로 지주출신의 지역 명망가들이었다. 정태균, 표정준, 신종삼, 김채환은 일제강점기 내내 거창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였다. 거창지역위원 중 몇몇은 전형적인 거창유지로 성장해갔다.

거창지역위원회 대표 이우형은 이후 1917년 경남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 1920년 거창면장, 거창군 참사, 1927년 거창금융조합장을 지냈다. 신준근은 1919년 거창군 참사를 지냈다. 또한 1923년 두 사람은 나란히 거창면협의회원에 임명되었다.

거창지역위원회는 1910년대 거창유지 단체의 출발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지역유지는 일제의 한민족 점령과 지배에 협조하면서 출현하였다. 이후 지역유지들은 일제와 적당히 협조하면서 소위 “연줄”과 “빽”을 얻었고, 이를 배경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지역 민원을 해결하면서 지역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거창유지들은 항상 거창군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지역유지의 서열은 민원 해결능력에 따라 매겨졌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거창유지는 지주이자 기업인이요, 위천면협의회원, 경상남도평의회원,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를 두루 지냈던 위천면 강동마을 출신 정태균이었다.







신용균-web
* 신용균 (문학박사, 거창고등학교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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