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멈추어서 내 마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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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멈추어서 내 마음 바라보기
  • 편집부
  • 승인 2015.06.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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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혜성여자중학교 교사)

6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수업하기 전, 서너 명의 아이가 와서 시를 외우겠다고 앞에 섰다.

“시 외우는 것은 이제 끝났는데, 몰랐어?”

“오늘까지 확인 받으려고 새벽까지 다 외웠는데요.”

주민이가 안타깝게 말하니 함께 섰던 몇몇 아이들도,

“저도 그 긴 시를 다 외워 왔는데요.”

새벽까지 준비했다고 마음으로 호소하는 아이도 있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아이도 있다. 또 주민이의 말에 맞장구치는 아이들도 있다.

“너희들 안타까운 마음은 알겠는데, 시 외우는 것은 이제 끝났어. 오늘까지는 써 오는 것만 인정하겠다고 몇 번 말했는데.”

“맞아요. 들었어요.”

옆에 있던 아이들이 거드니 힐끔 쳐다본다.

“쟤들은 들었는데 너희들은 못 들은 모양이네. 한 달이 넘고 지난 주까지 시간을 더 주었잖아.”

아이들이 투덜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간다.

시 단원에 공부하기 앞서 8편 외우기라고 했다. 기간은 한 달. 순서대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 편한 대로 한 번에 한 편을 외워도 좋고, 두 편 이상을 외워도 좋다. 외우는 것이 어려우면 시를 10번씩 쓰면 외우는 것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언제든지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교사의 말 따로, 행동하는 아이들 따로다. 제가 듣고 싶은 만큼만 듣고 행동한 것이다.

공부 시간에 선생님의 의도와 상관 없이 자기 잣대대로 행동하다가 수행평가 감점을 당한 영민이 예를 들면서 온전히 잘 들어야 하는 까닭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업을 하는데 인혜가 옆 아이와 이야기를 한다.

“인혜야, 수업 제대로 온전히 듣자.” 하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래도 들을 것은 다 듣고 있어요.” 한다. 그렇구나. 너는 다 듣고 있구나.”

말은 그랬지만 잘 들어야 하는 까닭을 방금 이야기했는데 그러니 내 마음이 요동을 친다. 인혜에게 “집에서도 그러니.” 넌지시 물으니 그렇단다. 부모님이 자기에게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한단다.

올해 들어 자기의 잣대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더 흔하게 보인다. 더불어 생활하면서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나 약속이 있다. 자라면서 바르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머리로 안 것을 몸으로 익혀서 자연스럽게 그때그때에 맞게 나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 익히기도 전에 멈추어 버리는 일이 흔하다. 머리로 익힌 내 생각, 내 잣대가 옳다는 믿음.

부모니까, 어른이니까, 정치적 자리에 있으니까. 머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익혀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어른들의 모습을 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익히기 보다는.

삶에서 그때 그때 일어난 일들 가운데 틀린 것,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고치고, 잡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라는 아이들의 틀린 꼴을 인정하지도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으니 몸으로 익히기도 전에 멈추어 버리고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마음으로 익혀서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와지지 않는다.

내가 알고 내가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자부심은 허영심의 일종이라고 한다. 의식 수준의 문제라고도 한다.

내가 옳다는 자부심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잣대가 옳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의 피해를 몸소 겪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겪지 않아도 될 것을.

아이들에게 바른 잣대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 수업을 마칠 무렵이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공책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 꼴을 보기가 힘들다.

멈추어 잠시 틈을 가지고 내 마음 작용을 지켜보았다. 요란하게 내 마음 작용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수업 내용을 그림으로 하는 게 아닌가.

그렇구나. 그렇게 정리하는 방법도 있구나.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멈추어 바라본 게 무척 다행으로 여겨졌다.

멈추어서 온전하게 바라보고 그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잣대도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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