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47)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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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47) 「은행나무」
  • 한들신문
  • 승인 2019.11.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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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맺어 준 사랑
김선남/천개의 바람/2019.11

김은옥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것 가운데 단연 으뜸은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 일 것 같아요. 거창의 의동 마을은 예쁜 은행나무 길로 유명하지요. 사람들은 노랑으로 화려한 색채를 입는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해마다 한 번쯤은 꼭 가게 되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를 사이에 두고 깊어가는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을 아실 거예요. 저는 해마다 함께 가는 사람이 달라지곤 해요. 한 해는 옆지기와 단 둘이 호젓이, 한 해는 정다운 사람들과 왁자하게, 한 해는 하루에 두어 번을 갈 때도 있지요. 올해는 동화 모임 식구들과 은행나무책을 들고 책 버스킹을 했어요. 때마침 출간된 따끈한 책을 들고 우리만의 멋을 즐기는 기분은 정말 짜릿했어요.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나무책을 들고 사진으로 남기고 책의 맛을 깊이 느꼈어요. 은행나무의 정취를 못 느끼신 분들을 위해 오늘은 은행나무를 소개할까 해요.

은행나무책을 읽기 전에는 은행나무가 초록에서 화려한 노랑으로 옷을 갈아입고 열매를 맺는 일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어요. 사실 은행나무를 한 번도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죠. 이 책을 그린 김선남 작가는 자연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해 오랫동안 나무를 그려왔데요. 은행나무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은행나무의 한 해 살이가 우리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이 책을 쓴 것 같아요.

 

한 나무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그 나무는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은행나무가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특별하다는 건, 그 나무가 내 삶과 많이 닮았다는 거겠지요.

언제부턴가 나는 은행나무가 되어, 지금 나를 흔드는 바람이 멈추길 바랍니다. 하지만 은행나무처럼

기다리는 법도 배웠습니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죠? 은행나무를 어떻게 나의 삶 속에 투영시켰을까요? 바람이 불어오는 데로 함께 은행나무 길을 걸어 보실까요?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어요. ‘바람이 붑니다. 저 멀리 그녀가 보입니다. 전부터 있었을 텐데 그땐 몰랐습니다.’ 이 문장에서 전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 수가 다른 은행나무가 어느새 가 되고 그대가 되었어요. 나와 그는 서로 마주 보고 세상을 향해 한 발씩 내딛고 있지만 누군가의 아내로, 남편으로, 엄마로,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련을 만나지요. 그것을 바람으로 빗대었어요. 따뜻한 바람이 그에게 가 닿을까? 를 간절히 기다린 적도 있지요.

그가 그녀에게 꽃가루를 선물로 보내기 위해 꽃을 피워요. 그녀도 꽃을 피우고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려요. 바람이 맺어준 사랑으로 둘은 하나가 되어요. 그녀는 씨앗을 키우고 그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봐요. 세찬 바람이 잎을 떨궈 두 나무는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지요. 많은 날들이 지나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의 잎도 씨앗도 물이 들어요. ! ! 여문 씨앗들이 떨어지고요. 나무들에게는 이별의 소리이지만 씨앗들에게는 출발의 소리로 느껴져요. ‘씨앗을 키우고 보내는 게 이런 걸까?’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알까? 나도 몰랐을 그 마음을 이제사 조금 알아가지요. 지금 나는 아이들을 멀리 타지로 떠나보내 이별을 삭히고 그들의 출발을 응원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가 셋이라 한 아이가 떠난 자리에 한 아이가 지켜주고 있어요. 이럴 때 아이를 셋 낳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도 이 대목에서 목구멍에 알싸한 게 올라오고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그가 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도 그를 바라보고 바람은 또 불어오네요. 수많은 잎이 떠난 틈으로 바람은 세차게 불어오지만 두 나무는 알고 있어요. 언젠가는 바람이 멈출 것이라는 것을요. 두 나무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바람이 세차게 가지를 흔들어 부러뜨리고 꺾어도 바람이 멎을 것을 아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은 잎을 다 떨 궈 낸 다음에라야 알게 되지요. 그게 인생이네요. 미리 알면 재미가 없어서 일까요?

이제 은행나무도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바람은 멈추고 하얀 눈은 가지를 덮겠지요. 이제 두 나무는 잠이 듭니다. 어디선가 씨앗들도 잠을 자고 있을 테지요다음 해의 멋진 초록과 노랑의 향연을 위해 두 나무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달려가네요.

우리의 삶과 일생을 담담히 보여주는 이 그림책은 서정적이고 따뜻하고 뭉클하게 다가와요. 두 나무가 주인공이 되어 무채의 색에서 초록으로 노랑으로 이어지는 화면은 환상적이에요. 특히 두 나무를 이어주는 바람의 움직임이 손에 살랑살랑 만져지는 촉감으로도 느껴지고 솨솨하는 소리로도 느껴져요. 여러분들도 깊어가는 이 가을에 더 늦기 전에 은행나무의 매력에 빠져 보시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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