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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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연 그러한가?
  • 한들신문
  • 승인 2019.12.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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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족상담소 상담원김현숙
성·가족상담소 상담원김현숙

한약 먹는 동안 쇠고기는 먹어도 되는데 왜 돼지고기랑 닭고기는 안 돼요? 돼지나 닭의 무슨 성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백발의 약사는 말없이 나를 훑어보더니 양팔을 책상에 짚고 서서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대답을 기다리다 머쓱해져 그냥 약방을 나오려던 순간, 약사가 조제실 안으로 들어가 유인물 2장을 들고나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읽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만든 자료인데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받아든 종이 앞뒷면에는 다양한 식품과 약재에 대한 효능과 상호작용, 인체 흡수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약방을 나서는 나에게 약사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이 지역에서 30년 넘게 약방 해오면서 숱한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줬는데, ‘?’라고 물어본 사람은 오늘이 처음이요. 이렇게 복약 지도하는 거. 저도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와 설명서대로 주의사항을 지키며 바른 방법으로 약을 먹어서 그런지, 심하게 아프던 증상은 빠른 속도로 호전되어 곧 예전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식품과 약재에 대한 작은 지식은 덤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는 나의 태도는 대부분 괜찮은 결과를 가져오곤 했는데, 얼마 후, 정말 문제 제기가 필요한 사회 문제들에 있어서 나는 집단의 편견에 갇혀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들,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신념들이었다.

예를 들면, 계단을 올라갈 때면 당연히 가방으로 치마를 가리고 조심조심 올라가야 하고,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피해를 보았다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므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 아무리 더워도 유두가 드러나는 노브라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여자가 치마를 잘 가리면 불법촬영 범죄는 정말 없어지는가?

피해자가 조심해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음주운전 사고를 없애기 위해 술 취한 운전자가 모는 차와 부딪치지 않게 다른 차들이 잘 피하면 된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렇게 사고가 났다면 음주 운전자가 아닌 제대로 피하지 못한 나머지 운전자들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노브라는 어떠한가? 해수욕장에서 남자는 웃통 벗고 다녀도 여자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여성의 가슴을 사회가 성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에도 불편한 브래지어에다가 브래지어를 가릴 속옷을 입은 후에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브래지어라는 사회적 굴레에 여성이 갇혀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를 과하게 제약하는 성차별이다.

얼마 전 또 한 명의 걸그룹 출신 가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왜 그토록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명 노브라사건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전, 그녀는 이슬만 먹을 것 같은 청순한 외모의 순수한 소녀이미지로 소개되었고,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들을 것 같은 수동적인 성적 상품이었으므로 대중들은 조용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생크림을 먹는 사진과 노브라 차림의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며 자신의 성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자 비위가 건드려진 대중들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쁘고 몸매 좋고 착해서 반발하지도 않는 다른 여자 아이돌처럼 머리 숙이며 눈물 흘리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소신껏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대중들에게 반발하는 모습으로 비쳤으므로 분노한 대중들은 그녀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비난을 쏟아부었고, 그녀는 결국 희생되었다.

잘못된 통념에 길든 채로 살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한 번 더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질문하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다.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게 바르다고 생각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한 적 없다면 지금의 흐름이 불편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고쳐야 하는 대상은 옆에 있는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제도이며, 그 첫걸음은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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