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을 거두며 나는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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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거두며 나는 내게 묻는다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0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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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 묻는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내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천막을 왜 지켜왔는가.

 

새벽 별 보며 집 대문 나섰다가

밤 어둠에 싸여 집 대문에 돌아왔던

국회 앞 1인 시위하면서, 과천정부청사 투쟁하면서, 법무부 투쟁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군청 앞 민주광장에서 피켓시위하면서,

장날이면

장터 곳곳 누비며 거리서명 받으면서,

시시때때로 거창 골골이 목이 터져라 방송하면서,

우리는 천막을 왜 지켜왔는가.

 

천 번을 생각해도 만 번을 생각해도

학교 앞은, 주거밀집지역 옆은

교도소 자리가 아니다.

학교 앞 교도소 이전하라.

3만 거짓서명 진상을 조사하라.

관련자를 즉각 처벌하라.

 

이 간절한 우리의 깃발

불끈 두 손으로 잡고서

우리는 천막을 왜 지켜왔는가.

때로 대규모 집회하면서

때로 거리행진하면서

때로 낯선 사람 손을 잡으면서

때로 투쟁 기금 마련 주막도 하면서

밤새 고민해서 만들어 낸 우리의 전단지

거창 전 아파트 우편함마다, 거창 전 지역 집 대문마다

빠짐없이 꽂으면서

거창뿐만 아니라 함양 산청까지 원정 집회하러 내달려가면서

우리는 왜

우리는 왜 천막을 지켜왔는가.

 

천막을 뜯어내려는 자들과 핏대 올리면서

멱살이 잡히면서 팔에 몸에 피멍이 들면서

너무나 억울해 하늘에 땅에 통곡으로 통곡으로 울부짖으면서

뜯어지면 다시 세우고 뜯어지면 또다시 세우며

458일 동안

우리는 왜 천막을 지켜왔는가.

 

그렇다.

천막은 우리의 분노였다.

천막은 우리의 결의였다.

천막은 우리 모두의 함성이었다.

천막은 우리의 연대이고 우리의 눈물이고 우리의 통곡이었다.

천막은 우리의 보루이고 우리의 참호이고 우리의 깃발이었다.

천막은 음모와 모략과 부패와 불통으로부터 정의로운 거창을 지키려는

우리의 당당한 항거였다.

 

때로 힘들 때

때로 숨이 턱턱 막힐 때

때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천막은 위로였고, 안식처였고, 웃음이었고, 따스한 보금자리였다.

암울한 터널 저 끝 가야 할 길 밝히는 출구였다.

그렇다.

천막은 우리의 동력이었고, 지치지 않는 헌신이었고, 꺼질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천막을 거둔다.

더는 더이상은

이 천막으로 우리 모두 담기에는 너무 좁아서

천막을 거둔다.

어제의 너만이 들어갈 천막이 아닌

어제의 나만이 들어갈 천막이 아닌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 다독이며

어화둥둥 신명나게 춤출

우리 모두가 함께할

새로운 천막을 위해.

거대한 거대한 거창 모두의 천막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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