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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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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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 차  례 ◀

국회와 4당 당사 앞에서(1)
국회와 4당 당사 앞에서(2)☜
합동위령제
특별법 발의
3당 합당과 문민정부
제41주기4회 합동위령제…

▲국회 앞 시위
▲국회 앞 시위

 

국회와 4당 당사 앞에서(2)

김대중 총재는 정상용 의원 덕분에 쉽게 만나 거창사건명예회복 법 협조를 부탁했고, 김 총재도 여러분들의 억울한 심정을 잘 안다며, 광주사건의 모태가 거창양민학살사건이라면서 군부의 불법을 개탄하면서 법 제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 금일봉까지 내놓았다. 물러 나오는 길에 이기택 의원을 만나 주변 식당으로 안내되어 점심 식사 대접까지 잘 밭았다. 김대중 총재나 정상용 의원 그리고 이기택 의원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가?

지금 시대에 와서 우리 지역 신성범 국회의원도 외면하는데, 당시 그분들은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우리 유족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2진은 김동영 의원의 보좌관 최태현 씨의 안내로 마포에 있는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만났다. 김동영 의원이 배석하여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확약받고, 재경향우들은 돌아가고. 신원, 부산, 서울 유족들과 동행한 면민들만 종로구 신문로 파출소 옆 신 민주공화당 당사 앞에 모였다.

신원 영승식당 주인 도해락 씨의 선창으로 거창학살 해결하라!”, “5·16은 제2의 학살자다!” 등의 구호를 외쳐도 아무 반응이 없어 2층으로 쳐들어가니 당직자 몇 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책임자를 불러 김종필 총재 면담을 요구하니까, 지방 출장 중이라 내일이나 온다는 것이다. 맥이 풀렸다. 11월의 날씨는 밤이 되니 쌀쌀했다.

다행히 당사에는 난방이 되어 있어서 좁은 당사 사무실 바닥과 복도에 신문을 깔고 주저앉았다. 바로 옆에 신문로 파출소가 있으면서 수십 명이 단체로 외치고 떠들어도 무관심이었다.

한때는 서슬이 퍼런 권력의 2인자였는데, 지금은 제4당으로 전락하니까 공권력마저 무시하니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신문로 주변에는 큰 식당이 없었다. 서울에 연고자가 있는 사람들은 가고 남아있는 사람은 30여 명 남짓 되었다. 유족 한 사람을 데리고 동교동 집으로 와서 픽업트럭을 끌고 영등포구 시흥동 근처에 있는 삼립빵공장으로 달렸다. 30여 명이 먹을 빵과 우유를 사려면 가계에서는 여러 곳을 헤매야 할 것 같기에 직접 공장으로 가니까, 금방 구워낸 빵이 있었다. 주문생산이라 안 된다는 것을 사정하여 소매 값을 주고 사야 했다. 당시는 대형 슈퍼마트가 없어서 우유를 사는데도 여러 가계를 돌아다니며 사모아, 빵과 우유로 유족들과 같이 허기를 면하고 집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같이 밤을 보내기로 했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사무실 벽에 기대어 지루한 밤을 보냈는데, 유족들이 사무실에서 밤을 보낸다는 보고가 갔는지, 아침 일찍 직원들이 나와서 식당으로 안내하여 아침 식사를 했다.

▲국회 앞 시위
▲국회 앞 시위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새우잠을 자고 세수도 제대로 못해 하루 밤사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공무원 출근시간에 맞춰서 김종필 총재가 김용환 의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어제는 지방 출장 중이라서 못 와 미안하다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억울함을 강조했고, 5·16이 묘역을 부관참시하듯 했다는 설명을 하고,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협조 요청을 하였다. 김종필 총재는 5·16 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며 유감을 표시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조사단을 현지에 보내 철저한 진상 파악을 할 것이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3야당 총재들은 유족들 면전에서는 너무나 협조적인 척을 하고 아픔을 같이 한다는 꼬임에, 유족들은 당장 명예 회복이라도 될 것 같은 기분에 들떴다. 마지막으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당사로 향했다.

안국동 골동품 상가가 밀집해있는 중간에 고대광실(高臺廣室) 같은 큰 건물이 집권여당 당사란다. 길이 무척 복잡한데 버스 2대를 주차해놓고, 구호를 외치려는데, 당시 곽후섭 민정당 거창위원장이 이근식 민원실장과 유족대표를 박준병 사무총장 방을 경유하여 윤길중 당 대표실로 안내하였다.

윤길중 대표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유족대표들과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문병현 회장의 억울한 거창양민학살, 통비분자가 웬 말입니까? 특별법 제정하여 명예 회복시켜달라는 항변에, 윤 대표도 자유당 때 야당 국회의원을 하면서 거창양민학살두둔 발언을 하다가 옥고까지 치렀다면서, 여러분들의 억울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회에 청원법이 오면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면담을 끝내고 당사 정문을 나오니 오전 11시가 되었다. 박준병 사무총장이 나와서 주변 식당에 점심식사를 시켰으나 때 이른 시간이라 식당들이 준비가 되지 않아 서 네 군데로 분산하여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는데, 교통비 하라며 금일봉까지 주면서 전송을 했다. 12일 간 국회의장과 4당대표를 만나서 긍정적인 약속을 받아 집회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을 하며 신원, 부산 대절 버스는 떠나고 해산했다. 돌아오면서 울지 않는 애 젖 안 준다는 말을 뇌이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국가가, 울지 않으니 나 몰라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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