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김영석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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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김영석 조합원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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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조화로운 지역공동체를 위해, 연구·고민하는 향토연구사 김영석 조합원

 

나에게는 하늘 같은 선배님이시다. 늦은 밤 '김영석동물병원'에 들어서니 두세 평 됨직한 사무실에 책이 빼곡하다. 이 작은 사무실에 가조역사연구소가 같이 동거할 예정이라 한다. 이야기는 70년대를 지나 80년대, 거창교도소까지 그칠 줄을 모른다.

 

거창언론협동조합에 참여한 동기가 있는지요?

우리 거창에도 군민이 원하고 보고 싶어라 하는 신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거창 사람으로 거창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에서 성장하고 거창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거창 사람 맞네요. (웃음) 어릴 때는 모든 지역이 거창과 같은 줄 알았는데 전국을 다녀보니 각 지역이 산세도 다르고 풍속도 차이가 커요.

우리 거창은 산세도 험준한 데다 거창에 입향조 (처음 들어온 선조)한 분들 대부분이 고려말이나, 조선 중엽 4대 사화 때 피난 오신 분이거나 전쟁과 난을 피해 오신 분들이지요.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분들이라 봐야지요.

외부에서는 거창이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라고들 말하곤 하는데 거창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텃세가 심한 그곳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알고 있는 선배님 한 분은 거창에서 생활한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거든요,

거창에는 시민사회단체가 많은데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각 단체의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 비슷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외연 확장이 안 되고 그들만의 활동에 국한되는 것 같아요.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배척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양성을 가졌으면 해요.

거창 사람들은 보수적인 전통 속에서 텃세가 심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고 있어요.

 

거창지역 운동권 1세대라고 하던데요?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교장 선생님은 교육 당국으로부터 파면당한 때였어요. 그런데도 학교에 입학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였지요. 73년 대학에 입학하고, 구미에 있는 카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면서 한국농업문제의 실상을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긴급조치가 내려진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민주화 문제와 국가 정통성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운동권 학생이 되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생활을 마치고 거창에 돌아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가톨릭농민회도 결성하고 경남가톨릭 농민회 결성에도 참여하고 80년 광주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는 같이 동참하기도 했지요.

부산의 부림사건(영화 변호인)이 일어나기 1년 전 대구의 두레양서조합사건에 연루되어 대공분실에서 40여 일간 갇혀 있었어요. 온갖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반공법 및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화원 교도소에 갇혀 있으면서 5관구 사령부에서 1심 재판을 받았고, 이감되어 영등포구치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면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받았어요. 그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요.

출소 후 8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고향 가조에서 생활하면서 정보당국의 밀착 감시와 반공법위반자란 견제를 받았어요. 그러한 생활을 하다 보니 거창 운동권 1세대라 하나 봐요. 그 당시에는 저를 담당하는 정보 형사가 있었으니까요.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요? 거창읍에 있는 모 라이온스클럽에 참가하는 선배가 가조에도 라이온스클럽을 만들어 보자 하여 주선하여 창립하려고 하니 제가 참여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빠지고 나서야 창립한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지요. 그 일이 있고 난 뒤 여러 단체의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었고요. 제가 농민후계자로 선정되어 가조농업경인협의회를 만들고 거창군연합회를 창립할 때에도 농촌지도소의 반대로 회장이 되지 못하고 부회장만 3번 맡고 나서야 거창군연합회 회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들이지요. (웃음)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이상파와 현실파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현실을 딛고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어요. 주어진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늙은이라고나 할까요?

 

거창문화원 이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거창문화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거창문화원은 1958105일 향토문화 발전과 지역민의 문화의식을 고취하고 정서함양에 이바지하고자 발족하였어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문화 창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참여와 교류 확대, 창의적 도시를 위한 문화 역량 제고, 배움과 나눔의 순차적 실천 공동체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역사적 전통성, 지역 문화의 공공성과 향토문화의 기반 확대를 위해 부설 향토사연구소와 10여 개 문화동아리를 가지고 있지요. 각종 학술대회 개최와 거창문화를 비롯해 지역사연구지를 매년 발간하고 지역의 문집 등을 국역하여 발행하고 있습니다.

 

석강리 고분군이 궁금해요.

석강리 고분군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뛰놀던 곳입니다. 그때는 무덤만 파면 가야토기가 나오던 시절이었지요, 세월이 지나 고령 지산동 가야 고분군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서 석강리 고분도 가야 시대에 가조지역을 지배하던 지배층들의 무덤이라 생각하고 틈나는 대로 답사하면서 아쉬움만 가졌었는데, 올해 M13 분이 발굴되면서 각종 귀걸이와 곡옥과 홍옥이 있는 목걸이 등 60여 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요.

우리 가조지역은 약 2만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측됩니다. 당동의 당집 등 원시 소도 제천 문화의 원형이 남아있고요. 또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일본왕가의 조상신이 살았던 고천원으로 추정되는 터이지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1권에는 신라 5대 왕인 파사금 8(AD 87)에 가조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유서 깊은 석강리 고분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줄 귀중한 유적입니다.

이번에 발굴된 M13 분은 축조 방법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지요. 자 모양의 구조로 축조 방법이 아주 정교해요.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고분을 발굴하여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70년을 메꾸는 자서전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자서전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요. 70을 앞두고 제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한번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 선배님들이나 친구들을 보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나 할까요?

6·25동란 기에 태어나서 60년대의 보릿고개 시절을 넘기고, 7~80년대 산업화 시대도 겪었지요. 70년대의 암울한 유신과 긴급조치하에서 민주화운동, 5·18 광주항쟁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겪었던 울분을 토해 내고 싶어요. 군사독재정권하에서 했던 농민운동과 사회활동에 대한 기억들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2년 동안 정리하여 뜻있는 70번째 생일을 맞을까 합니다. (웃음)

손자들이 자라면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사셨고,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자료집을 그때그때의 사진과 글들로 정리해 보려고 해요.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요?

저는 몰락한 유학자 집안의 7남매 막내인 말단공무원 부친의 32녀 중 둘째랍니다. 제게는 아들만 둘입니다. 큰애는 천안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요. 둘째는 서울에서 공기업에 다니고 있고요. 손자도 두 명이나 됩니다. 지금은 집사람과 둘이서 생활하고 있어요.

 

한들신문에 바라는 것은요?

한들신문은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지역 신문 아닌가요? 지역주민이 알고 싶어라 하는 것을 심층취재 하여 알려 주면 좋겠어요. 지역의 각종 미담도 소개해 주고요. 지역 문화자료를 발굴과 보존하는 지역주민의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게 이어지고 아문 줄 알았던 생채기가 덧나는 통증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우리는 민주화에 투신한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살고 있는가?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몫이다. 여전히, 살아남은 자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평생 실천하는 선배님이 고맙고 자랑스럽고. 무표정한 듯 흔들리는 미소가 늘 선배님의 입가에 머물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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