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팝콘】영화 ‘로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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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팝콘】영화 ‘로마’를 보고
  • 한들신문
  • 승인 2020.01.23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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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전미정

로마는 감독이자 작가인 알폰소 쿠아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정치적 격동이 극심했던 1970년대 초반 멕시코의 한 마을인 로마.

클레오는 한 중산층 가정의 하녀로 살아가는 인디오이다. 그 집의 구성원은 의사인 남편, 교사인 테레사, 그리고 한창 성장기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과 테레사의 친정엄마이다. 이 가족의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잠자리에서부터 깨우는 일까지 클레오가 맡아 한다. 그녀는 아이들 돌봄을 극진한 애정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은 클레오를 무척 따르고 사랑한다.

클레오에게는 2년 동안 사귄 페르민이라는 무예를 익히는 애인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혼자 자신을 챙기며 살아왔다. 지옥 같은 삶이 무술을 만나면서 생의 의미를 찾았다 한다. 영화관에서 클레오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줄행랑을 쳐버린다. 그를 만나 다시 사정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무예 기술을 익히는 공터로 찾아간다. 역시나 그녀를 냉대한다.

주인집의 사정은 또 어떠한가. 퀘벡으로 연구하러 간다던 남편은 일주일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되고 커다란 갤럭시를 타고 술에 만취해서 주정하며 클레오와 자신은 버림받은 여자들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의 시위,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나치는 시민들. 총성. 시민들이 다쳤고 데모대가 상처를 입어 데모 현장이 아수라장이 된다. 클레오는 그 난장판을 피한 곳에서 페르민이 총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고, 오줌을 지리고 양수가 터져서 병원으로 옮겨진다. 한곳에서는 생명이 죽어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생명 탄생이 일어나고 있다. 클레오는 병원에서 사산한 딸을 낳고 슬픔에 잠겨서 삶의 기력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 테레사는 새 차를 구입하고, 헌차를 타고 아이들과 클레오를 데리고 이별 여행을 떠난다. 지나간 삶에 대한 작별의식이다. 바닷가에서 테레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 둘이 바닷물 속에서 놀다가 세찬 파도에 휩싸여 밀려간다. 수영도 못하는 클레오는 바다로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한다. 잠시 후 돌아온 테레사, 아이들, 그리고 클레오는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한다. 클레오는 자신의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고 울며 고백한다. 이 장면은 새로운 가족탄생의 모습이고,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장면인 것 같다. 휴양지에서 테레사는 아빠는 떠나버렸고, 우리는 아빠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단조로운 어조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아빠는 자신의 짐을 싸서 집을 나갈 것이라고도.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아빠의 짐이 사라진 빈자리가 넓어서 좋다고 한다. 바뀐 방의 구도와 달라진 쓰임새가 멋지다고 탄성을 지른다. 클레오는 자신이 거처하는 옥탑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간다. 하늘이 있고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마지막 영상은 우리를 격려한다.

첫 장면에서 정지된 긴 샷으로 카메라가 철썩이는 물소리를 오랜 시간 보여준다. 바다의 파도인 줄 알았다. 파도처럼 비눗물 섞인 물이 바닥을 찰싹거린 장면인데, 클레오가 바닥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삶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곳도 바닷가이다. 물이다. 물은 여성성이다. 모성을 상징하는 그 부드러움,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힘, 파괴와 무책임을 자행하는 남성들이 개똥이라면 그 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클레오는 재생의 힘, 다시 살고자 하는 희망의 바탕이다.

흑백 톤으로 진부한 삶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쿠아론 감독의 이야기가 따뜻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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