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박순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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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박순 조합원
  • 한들신문
  • 승인 2020.01.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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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 선생님은 한들신문 조합원 중 가장 연장자(82)이시다. 처음부터 조합원에 가입해 주셨고 대의원도 사무실을 찾아와 신청해 주셨다. 선생님의 살아온 삶이 궁금해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20여 년 동안 봉사하신 재건학교와 시민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선생님 이야기 중 두 학교에 관한 이야기 일부분을 이곳에 소개하기로 한다.

 

재건학교는 1965년 군청 뒤 임시 건물을 교사로 사용하는 야간학교였어요. 재건촉진위원회에서 운영하였지요. 초창기는 국가지원을 받아 운영하였고요. 재건학교의 학제는 2, 교과는 교양과목이었고, 야간 3시간씩 학습하였어요. 재건학교에 다닌 학생들은 수료한 후 주간 중학교에 편입하기도 하고 검정고시에 응시하여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주간에는 일하는 형편이었고 학비 부담 관계로 재건학교에 남아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학생이 많았었지요. 재건학교는 학비는 무료였어요. 교사들은 무보수 봉사 정신으로 학생을 가르쳤고요. 교재는 헌 교재를 얻어서 사용했고, 학용품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군에서 지원을 받았어요.

1968년 한 독지가가 상동에 학교 터 200평 정도를 기증해 주었어요. 그 땅에 교실 2칸 교무실 겸 사무실, 사택을 시멘트 블록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은 슬레이트로 하고 골마루도 없는 초라한 건물을 신축하여 학교를 이전 하였습니다.

1969년부터 학교 건립과 운영경비 문제로 재정상 많은 부채가 발생하였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채 청산위원회를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1972년도에 학교 운영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제가 1972년부터 수학 교사로 교과를 강의하기 시작했지요. 낮에는 일반 학교에 근무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근무했지요.

1975년부터는 제가 사무장 일을 맡아서 교무운영과 교사초빙을 하였어요. 소풍을 가면 도시락을 싸지 않고 공동으로 똑같이 국수를 먹고 자신들이 농사지은 것을(, , 대추, 자두, 호두, 고구마, 땅콩) 가지고 와서 먹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교무실과 교실 난방은 영하 10도가 될 때, 톱밥 난로로 난방을 하고 평일 때는 난방을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수업을 하였지요.

그 당시 전교생은 80여 명이나 되었어요. 책걸상이 문제였으나, 독지가 20여 분이 모금한 돈으로 책상과 걸상 80여 조를 제작 구매하여 기증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돕거나 직장에서 일하고, 6시에 나와 3시간씩 공부했어요. 주민의 호응이 높았지요.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 점점 늘어났지만 수용할 교실이 부족하여 다 받아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후에 지원금이 중단되고 재정이 어려워지고 독지가 단체들도 해체되었어요, 최남식 교장이 운영비를 자부담해야만 했지요.

1977년 이렇게 학교 운영이 어려워져 폐교 직전에 있을 무렵 거창 청년회의소(회장 최찬도)에서 운영권을 인수하게 되었어요. 학교장은 김영수 청년회의소(J.C) 특우회 직전 회장이 맡게 되었어요. 2대 교장은 신중우, 3대는 신중광, 4대는 마지막 주병태 교장이었지요.

1978년에 학교 터를 매각한 약 천만 원 정도의 돈과 교사 건립추진위원회와 청년회의소 회원들이 모금한 돈 육백오십여만 원을 가지고 현재 청년회의소 자리에 교사를 짓고 학교 교명을 거창 시민학교로 바꾸었어요. 학교 대지 매입은 거창군이 지원해 주었고요.

19801층은 교실 2칸 사무실 겸 교무실, 2층은 강당과 사무실로 된 2층 건물로 준공식을 하였습니다. 시민학교는 1993년부터 의무교육이 완전하게 시행될 때까지 정규학교에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쳤어요. 당연히 저도 시민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교무운영을 하였지요. 19932월 시민학교가 폐교되고 건물은 거창청년회의소 전용 건물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배움에 목마른 가난한 청소년들의 샘이 되고 발판이 되었던 재건학교가 있었고, 독지가들이 있었고, 선생님처럼 봉사하는 교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신 선생님께 고개가 숙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년처럼 자전거를 타고 약속장소에 나타나신 선생님은 긴긴 이야기를 남기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셨다. 선생님의 바람처럼 재건학교와 시민학교의 역할과 운영이 제대로 평가되길 바란다. 지금처럼 선생님이 늘 건강하시기를 또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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