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새내기들의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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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새내기들의 체험학습
  • 한들신문
  • 승인 2020.02.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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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초 교사 최희숙

선생님, 비 와도 체험학습가요?”

알림장을 통해 알려주었던 체험날짜에 맞추어, 반드시 나와야 할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벌써 마음은 수목원에 가 있는 녀석들의 질문이다.

비 안 온다!!!!!!!!!!!!!!!!!!!!!!!!!!!!!!!!!!!!!”

선생님이 비 그치게 할 테니 지금부터 물어보지 마라!!!!!!!!!!!!!!!!!!!!!!!!!!!!!”

억지 같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어떤 질문까지 나올지 모르는 새내기들의 특성을 알길래. 근거 없는 대답으로 질문을 일축(?)해 버렸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아이 한 명이 태양을 그려서는

선생님, 저 이거 창문에 붙일래요.”

그래라.”

그때부터 나는 비가 내리지 않게 해야 할 의무 아닌 의무가 생겼다.

다음날 새벽 420분쯤, 잠이 깨어 밖을 보니 비는 꾸준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530분에 진주에 사는 친구를 깨워 날씨 어떤지 물어보니 굵은 빗방울은 그쳤단다. 가야 할 목적지 쪽에 굵은 빗방울이 좀 더 그치기를 기대하며 무심코 티브이(TV)를 보니 날씨(Weather) 24 방송에서 날씨 예보를 한다. 방송에서는 음악도 같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제목이 플리스, 돈트 스탑 더 레인(Please, Don’t stop the rain).” 제임스 모리슨(James Morrison)이다. 비에 생각이 꽂혀있던 나는 노래를 따라 비가 그치기를 빌며 노래 제목에 내 마음을 실어 흥얼거리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출근 준비하다 서울서 내려온 딸아이 간다기에 아침 차려주고는

엄마가 새벽에 비 그치라고 이 노래 플리스, 돈트 스탑 더 레인(Please, Don’t stop the rain). 엄청 많이 생각했다.”라며 포스트 잇에 써 놓았던 노래 제목을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딸아이가 박장대소하고 웃는다(박장대소였는지 피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 이거 무슨 뜻인지 알아?”

그래, 비 오지 말라는 뜻이잖아. ?”

엄마, 무조건 돈트(Don’t)가 있다고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그다음 낱말을 잘 봐야지.”

그래서, ?”

이 뜻은 비가 주구장창 내리라는 뜻인데.”

아닌데, 어디 보자?”

자세히 보고 또 보았다. 스탑(stop)을 돈트(Don’t) 하라? 멈추기를 하지 마라? 그럼 플리스(Please)는 왜 있었지?!!!!!!!!!!!!!!!

비에 가장 민감해 있던 그 순간에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글자만 보았던 것이다. 혼자서 너무 많이 웃어서 몇 달 치 웃음을 다 웃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비가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시간이 흐르고 출근길, 예정되어 있던 체험학습을 감행(?)해도 될 정도의 날씨다.

새내기들의 체험학습은 그렇게 잘 진행되었고 웃지 못할 일화가 하나 탄생하였다. 그날의 일화를 떠올리며, 아이들의 눈높이와 맞추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실수를 교육 현장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어떤 경험과 체험으로 삶을 풍성하게 해주어야 할지 하루하루가 또 다른 고민이다. 일화만을 만들어 내는 교육 현장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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