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업주부는 왜 죄인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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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업주부는 왜 죄인이어야 하는가
  • 한들신문
  • 승인 2020.02.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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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족상담소 상담원 박수미

결혼 후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5년 동안 난 전업주부의 생활을 했었다. 너무 정신없고 전쟁 같았던 그 시간을 지나 다시 직업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5년 전 늦둥이 딸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다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소홀히 했던 큰아이들에게 보상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아이들 보내고 나면 이불 털어 너는 것부터 시작해 청소, 세탁, 반찬 준비, 간식거리 준비, 이유식 끓이기. 장난감 정리.해도 해도 끝없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는 서비스직으로 전환되어 세 아이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지인들과 오전에 차라도 한잔한다든지 브런치라도 먹는 날에는 나는 참 팔자 편한 여자가 되어야 했다. 세상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여자이면서 전업주부가 있어야 할 곳은 집안이었다. 온종일 집에 박혀 쓸고 닦고 가족 서비스를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나는 왠지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전업주부는 언제 쉬면서 지인들을 만나야 할까? 모든 직장인은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있다. 대한민국은 보통 9~6시 일 것이다. 그러나 전업주부는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지 않은 프리랜서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프리랜서가 오전에 브런치를 즐긴다고 나무랄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왜 전업주부는 오전에 브런치라도 먹으면 비난의 대상이 될까? 돈을 벌지도 못하는 사람이 돈을 쓰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 쓸고 닦고 맛난 걸 준비해서 웃는 얼굴로 24시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할 사람이 밖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서일까.

예전 우리네 어머니 시대의 전업주부는 아이들 훌륭히 잘 키우고 집안일 야무지게 하고 남편이 벌어온 돈 십 원짜리 하나까지 알뜰하게 아껴가며 살림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뀐 지금에도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의 고정관념은 여전히 전업주부가 되었으니 너라는 사람은 모두 지우고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그 고정관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나쁜 일을 하는 것 같은 시선을 받아야 한다.

엄마라서 전업주부가 되는 길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모두 포기하고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도 하겠지만 그 안에서 내 삶도 내 일도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사회로 나가게 될 자신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평생 전업주부로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그들 나름대로 사회로 돌아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업주부들을 보며 따듯한 시선과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 전업주부로 살아가기 힘든, 대한민국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주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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