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그런 까닭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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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그런 까닭이 있었구나
  • 한들신문
  • 승인 2020.03.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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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중 교사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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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책 쓰기마음 그리기 3을 편집하려고 퇴근해서 집에서 컴퓨터를 켰다. 읽으면서 살펴보니 문답 감정이 군데군데 빠져 있다. 문답 감정이 빠진 아이들 글만 찾아서 마음공부 일기를 다시 읽고 문답 감정을 했다. 학교에서 틈날 때마다 글을 살핀 까닭인지 피곤이 밀려온다. 여름방학 때나 동아리 활동할 때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그때 말이나 글로 문답 감정은 했지만 기록하지 않았구나. 미리 정리하고 적어두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답 감정을 하다가 멈추었다. ○○와 김○○에게 책 마무리를 해야 하니 보내 달라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전자편지를 열어 보았다. 둘 다 보내지 않았다. 10월부터 아니, 2학기 들어오면서 책 쓰기를 마무리해야 하니 11월 초까지는 마음공부 일기와 소감문, 저자 소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다. 오늘은 꼭 보내겠다고 한 길○○가 보내지 않으니 실망스럽다.

편집을 가나다순대로 했다. 한 사람 분량이 빠지면 쪽수를 정하기부터 편집까지 모든 작업이 엉킨다.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책 편집 작업을 더는 진행할 수가 없다. 어찌한단 말인가? 내 마음도 몰라주는 녀석이 야속하다. 마음공부동아리 모임 때마다 마음공부 일기를 전자편지로 써서 보내라고 하면 늘 밤늦은 시간에 보내어 다음 날에 확인한 게 생각났다. 만일 보낸다면 내일 아침이면 와 있겠지. 출근하면 확인할 수 있겠지. 전자편지를 닫았다.

출근하자마자 전자편지를 열었다. ○○ 마음공부 일기와 소감문 어느 것 하나도 와 있지 않다. 혹시나 해서 다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일기와 소감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타고 멍해진다. ○○는 국제교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으로 떠나서 토요일에 오는데 그때까지 어쩌란 말인가? 책을 출간하려면 시간은 빠듯한데. 이 녀석 정말 너무하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빨리 마무리해야 할까? 대중을 잡아본다. 마음이 요란하다. 자꾸만 원망하는 마음이 나오고 끌려간다. ○○ 소감문과 일기를 제일 나중으로 돌릴까, 아니면 뺄까? 그래도 2년 동안 함께 해 온 아이인데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 글을 가장 나중으로 돌리면 편집이 흐트러지는데.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하구나.

일단 멈추자. ○○는 토요일 돌아온다. 일요일까지 보내줄 거라고 믿고 기다려보자. 급한 마음 추스르자. 편집을 조금 늦추자. 그때까지 다른 아이들의 소감문, 일기를 살피고 교정하고 다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지금 내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고 만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인다. ○○, ○○의 마음공부 소감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가 보내온 일기를 양식에 맞추어 정리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글을 마무리한 아이들의 글을 인쇄하여 나누어주면서 다시 살펴보라고 했다. ○○ 마음공부 일기가 6편이다. 한 편이 부족하다. 다른 아이들은 7. ○○는 주말까지 한 편 보충하면 되겠다. 좋지 않은 게 좋지 않은 것만 아니구나.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알고 나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내가 할 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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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공부 시간에 조나연에게 국제교류 간 길윤주와 카톡을 하느냐고 물으니 한다고 대답한다. 토요일 윤주가 국제교류 갔다가 돌아오면 소감문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토요일 윤주가 글을 보내올 것을 기다렸다. 소식이 없다. 참다못해 일요일 1240분 마음공부 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윤주 님, 소감문 보내주시면 책 쪽수가 매겨지고 1차로 마무리할 수 있는데. 에고. 기다리기 지치네.”

그러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으억, 죄송합니다.”

일요일이니 보내줄 것을 기대했다. 죄송하다는 말은 곧 보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반응이 없다. 오후 748분에 다시 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윤주야, 오늘 안으로 소감문 보내주세요. 아니, 지금 당장.”

화가 난다. 믿음이 배반당한 기분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답글이 올라왔다.

.”

이 말은 곧 보내겠다는 뜻으로 또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밤이 가도록 답이 없다. 잠이 얼핏 든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대충 서문이 나왔습니다.”

늦게 보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본문도 최대한 빨리 보내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와 있겠지. 출근했다. 전자편지를 열었다. 글이 없다. 길윤주 글 뺄까, 말까. 나는 그렇지만 마음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지만 책이 나오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게 분명한데.

다음 날은 학교 행사가 있어 윤주를 만나지 못했다. 퇴근 무렵 전화를 했다. 전원이 꺼져 있단다. 문자를 보냈다.

길윤주야, 나 어떡하나. 이래저래 고민이 길어진다.”

곧 전화가 왔다.

내가 책을 만들 때 표지부터 마무리까지 내가 작업을 한다. 한 사람이 빠지면 쪽수를 다시 정해야 한다. 어쩌면 좋지.”

아이들은 내 마음의 조급함과 책을 만드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내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느긋하지. 화낸다고 되지 않을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윤주가 선생님 제 글 빼도 할 말 없어요.”

…….”

멍하다. 정신 차리자.

오늘은 시간이 나니.”

학원 갔다가 오면 9시인데 그때 마무리해 볼게요.”

마지막까지 기다려보자.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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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학교 행사가 있어 윤주를 불렀다. 내가 쓴 글 , 를 윤주에게 보여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생각도 엉키고 마음공부도 잘되지 않아요.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구나.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한고비. 나는 애가 탔지만, 너는 정말 힘들었구나. 나보다 더.”

그 마음을 만나면서, 마음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구나. 참 소중하다. 잘 안 되는 나를 만나는 공부를 해 가고 있었구나.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겠지. 마음의 성질은 변하는 것이니까. 같이 마음공부를 해보자.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마음 그리기 3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 경계다.

이미 한 번 읽고 교정 본 일기를 다시 읽으려니 지루하구나. 대충 읽고 넘기고 싶구나. 얼른 빨리 검토하고 싶은 마음도 나와 초조해지기도 하구나. 이런 마음들이 뒤섞여 나오니 스스로 비난하고 싶구나.

마음공부 공식에 따라 공부를 해 보자. 검토하다 보면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경계를 따라 나온 마음을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자.

길윤주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마음공부 일기를 교정보는 경계를 따라 있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마음공부 일기를 내 생각대로 아닌 마음사용법대로 쓰니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2019.11.20.

 

마음공부 일기를 쓰고 나서 그 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 나누는 문답 감정을 한다. 그날은 문답 감정을 하지 않았다. 그냥 애쓴, 힘들었던 그런 일을 겪었던 윤주를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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