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현대사 이야기 - 1980년대 ④ - 1980년대 거창,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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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현대사 이야기 - 1980년대 ④ - 1980년대 거창,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
  • 한들신문
  • 승인 2020.03.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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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와이엠씨에이(YMCA)의 창립과 지역 농민운동의 시작

1980년대 초반 거창에는 아림민주협의회를 통한 정치 운동이 지역사회에 등장하게 된다. 아림민주협의회는 김영삼 계열의 야당이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의 정치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 중 김대중과 친분이 있던 이○○ 등 몇몇 사람들의 정치 활동 시작 통로였다. 이때 거창에는 야당 지구당조차 두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패배하자 아림민주협의회를 통한 야당 정치 활동은 98년 대선까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197910월에 창립된 아림농민회는 초기에 상당한 수의 농민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81년 전두환 정부의 등장과 함께 농민회 와해 작업이 진행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어갔다. 그러나 1983년에 탄압국면을 돌파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농민회의 이해와 농촌 지역에서 농협의 불합리한 사업 형태에 대한 농민들의 문제 제기가 확산하면서 농협 조합장 직선제 서명운동을 통해 농민운동이 활성화된다. 이후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욱 강한 탄압을 당하면서 활동이 중단되고 만다. 농협 조합장 직선제 요구는 지역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그야말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뒤이은 탄압국면은 농민들의 경제적 활동 자체를 농협이 상당한 부분 통제할 수 있었던 조건 속에서 이전에 공안기관과 경찰뿐만 아니라 농협, 그리고 그로부터 이권을 공유하고 있던 지역 유지들이 경제적 위협을 행사함으로써 농민회 회원 활동을 위축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80년대 거창농민회원들의 ‘골방’ 회의 모습. 신문지를 발라놓은 벽과 찌개 등이 정겹다.
80년대 거창농민회원들의 ‘골방’ 회의 모습. 신문지를 발라놓은 벽과 찌개 등이 정겹다.

한편 거창 기독교 청년회(이하 거창 YMCA)’1982년에 거창 YMCA 지역사회개발센터란 이름으로 문을 열게 되는데 여기에 쓰인 자금은 네덜란드의 기독교 재단으로부터 한국의 농촌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보내진 것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네덜란드의 기독교 재단이 한국의 농촌선교를 위해 기독교 재단인 거창고등학교 재단에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이 자금은 거창 YMCA 지역사회개발센터 설립과 거창고 직업보도관의 건립에도 쓰였다. 이때 네덜란드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지원받은 실무를 당시 거창고 교사 출신의 정○○이 추진했고 초대 총무도 그가 맡게 된다.

이때부터 농민운동도 그 중심축을 거창 YMCA로 서서히 옮겨가게 되는데 거창 YMCA의 회원 조직으로 아림농민회 회원들 여러 명이 가입했고 거창 YMCA의 가장 중요한 사업의 방향도 농민회원 활동의 지원에 맞춰졌다. 더군다나 거창지역의 농민운동이 등장하고 성장해 오는 과정을 함께 했던 정○○이 초대 총무를 맡게 됨으로써 거창 YMCA는 아림농민회의 유산을 일부 이어받게 된 셈이다.

한편 아림농민회에서 거창 YMCA로 활동의 축을 옮겨와 있던 농민운동은 1984년 무렵부터 농민조직을 만들려고 모색하게 되는데 1985년에 이르러서 가톨릭 농민회를 창립하게 된다. 가톨릭 농민회는 197712월 창립된 가톨릭 농민회 경남연합회 소속의 몇몇 거창성당 농민들에 의해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가톨릭 농민회 거창분회로 창립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농민 지도력은 당시 거창 YMCA에 회원 또는 이사 활동을 겸하고 있었고, 크리스챤 아카데미 농민운동가 교육을 거쳐 농우회와 아림농민회 활동의 주요 지도력으로 활동했던 표○○, ○○ 등 초기 농민운동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까지 가톨릭교회의 보호막 속에서라도 농민조직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욕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여기에 가톨릭 신자 출신의 농민활동가 변○○, ○○ 등이 참여하여 12명 정도의 회원으로 198522일 창립모임을 한다.

거창지역에서 농민운동의 중심축이 거창 YMCA에서 종교 사회운동 영역, 특히 가톨릭 농민회로 옮겨지는 데에는, 19841월 거창성당 주임 신부로 부임한 이윤호(필립보) 신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농민회의 활동은 1985농민 살길 보장하라라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선전사업과 19869양담배 수입반대 투쟁을 끝으로 일단락되고 19861219일 거창읍 갈릴리교회에서 거창군 농민회가 창립됨으로써 이후부터는 농민운동의 중심축이 거창군 농민회로 넘어가게 된다. 거창군 농민회는 이후 경찰의 창립총회 방해에 대한 항의, 도로 부역에 대한 부당함 제시, 수세 폐지 요구, 소값 투쟁, 농가 부채 투쟁, 추곡 수매가 인상 투쟁, 조합장 직선제 쟁취 투쟁, 의료보험료 납부거부 운동 전개, 농가 부채조사 보고대회 개최(거창성당), 한들 못자리 전시회, 도로 부역 폐지 운동 등을 통해 농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을 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 참고문헌
1. 유영재, 「지역 사회운동의 전개 과정 : 거창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운동의 계보학』,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2000)
2. 거창군농민회, 『거창군농민회 20주년 기념 자료집』, 2007
3. 사진 출처 : 인터넷 > daum > brunch > 80년대 경남, 독재에 저항한 사람

늦봄 조재원(문화 칼럼니스트)
늦봄 조재원(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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