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을 그라뇽과 남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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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을 그라뇽과 남행열차
  • 한들신문
  • 승인 2020.03.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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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블로 젤라또 전효민
산티아고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마을에는 순례객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 알베르게가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부터 수도원, 개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까지 다양합니다. 보통은 정해진 요금을 받는데, 많지 않지만 정해지지 않는 기부금을 받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가 머문 그라뇽 마을은 골목이 아름다운 작은 시골마을인데 어디나 있던 공립 알베르게는 없고 드물다는 기부 알베르게만 두 개 있습니다. 여느 알베르게처럼 도착하면 밥 해먹고 빨래할 생각으로 그라뇽의 알베르게에 들어갔습니다. 머리 길고 키 큰 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샤워하고 빨래 바구니에 빨래 넣으면 해주겠고 저녁 식사 시간은 여덟 시. 아침 식사는 일곱 시 반이랍니다.

작은 마을에 기부제 알베르게만 두 곳이라 의아했는데 세상에 두 끼 식사에 빨래라니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순례객들의 손길이 가득한 실내 벽면과 누구나 먹을 수 있게 길가에 내놓은 사과와 비스킷, 숙소 곳곳에 묻어있는 주인의 배려와 순례객의 감사 편지까지 둘러보니 마음이 훈훈하고 정겨워 피곤은 사라지고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그렇게 독특한 환대에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다가 저녁을 맞았습니다.

그라뇽 하면 숙소와 평온한 골목 산책이 마음에 남거니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바로 저녁 식사입니다. 식사 준비 도울 일이 있나 서성이는데 밥 먹을 사람들은 다 마을 골목으로 나오라는 주인아저씨. 저녁 식사를 위해서 순례객들이 노래를 부르는 게 전통이라 합니다. 골목에 나가 보니 건너편 기부제 알베르게에 머무는 순례객까지 한데 다 모였고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뭔가 기대하는 듯 웃고 계셨습니다.

한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이스라엘, 스페인. 각 나라의 순례객이 모여 잠깐의 작전 회의를 거쳐 장기자랑을 합니다. 우리 인원이 제일 많았는데 춤까지 추며 신나게 남행열차를 불러 모두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하면서 저희가 더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박수와 환호를 아낌없이 나누며 모두 한 곡씩 부르고 나니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먹음직스러운 저녁 메뉴가 등장! 준비하신 마을 분들께 잘 먹겠습니다! 인사드릴 때 제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눈빛이 마음에 남습니다.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기꺼이 섬기는 그라뇽 마을 사람들. 따뜻한 인정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얻는 까미노 사람들. 골목에서의 흥겨움이 식탁까지 이어져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기애애한 순례의 밤이 깊어갑니다. 2014. 10. 21 스페인 작은 마을 그라뇽


산티아고 순례길의 백미 중 하나가, 거쳐 가는 작은 마을에서의 휴식 그리고 알베르게(숙소) 인 것 같습니다. 800km를 걷는 중에 수 많은 마을과 알베르게를 지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을 만난 그라뇽 마을의 알베르게에서의 경험은 그 전과 후로도 없었습니다. 알베르게 전반에서 느껴지는 환대를 진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신다면 일정을 조정해 하루쯤 그라뇽 마을에서 머물러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햇살이 좋은 봄입니다. 이웃, 친구와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을 누리며 웃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2020.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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