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55)시 그림책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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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55)시 그림책 「흔들린다」
  • 한들신문
  • 승인 2020.03.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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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한성옥 그림작가정신2017.11
함민복 시한성옥 그림작가정신2017.11

 

평소 좋아하던 시를 그림책으로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함민복 시인의 시 흔들린다가 시 그림책으로 나왔답니다. 3월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이 책으로 정해야겠다 마음먹고 시 그림책을 동네 책방에 서둘러 주문했습니다. 띵똥~. ‘주문하신 책이 왔습니다. 시간 되실 때 들러주세요.’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어쩌면 보고 싶은 연인을 만나러 가는 시간만큼 설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어요.

흔들린다는 저에게 그런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시 그림책이랍니다. 책 표지에는 수채물감으로 그린 나무가 투명한 초록의 바람을 맞고 서 있습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바람의 방향은 왼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무는 흔들립니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어두운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칩니다. 다음 장을 펼치면 조금 잔잔해진 하늘에 어디선가 나타난 구름의 움직임이 바쁘게 느껴집니다. 비가 내리네요.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파란 하늘이 평화롭습니다.이제 초록의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를 만납니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리려나 봅니다. 익선이 형이 참죽나무 균형을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시의 처음 문장이 아슬아슬합니다. 큰 나무는 비스듬히 누운 듯 불안하고 짙은 초록의 물감은 바람을 그리고 나뭇잎을 떨어뜨립니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그 흔들림에 흔들리는 가지는 더욱더 많아지지요. 나무가 끝내 부들부들 몸통을 떱니다. 나무는 중심을 잡으려고 이파리 하나하나에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모든 흔들림의 중심에는 우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고, 흔들렸기에 덜 흔들렸으며 그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다고 말입니다. 보이지 않게 나무를 지탱하게 하는 것은 그 뿌리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은 흔들리며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대나무 마디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납니다. 대나무의 뭉툭 뭉툭한 마디가 어린 마음에도 안쓰럽게 느껴졌었지요. 그러나 대나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이 그러하네요. 아픈 것들을 용케 용케 버텨가며 흔들리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에게 이 시를 읽어 주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이 대목이 맘에 와 닿는다고 합니다. 나무의 생애가 세상 살아가는 모든 어른의 삶 같다는 걸 알아챈 것일까요?

우리는 세상 살아가면서 수 없이 흔들리고 흔들리겠지요. 흔들릴 때마다 뿌리처럼 나를 지탱해 주는 수채화 같은 시 한 편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수 없이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잡는 자연의 한 순간순간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표현한 시 그림책 한 권 여러분들 곁에 슬쩍 놓아둡니다.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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