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거창에는 새로운 문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1984년에는 ‘우리문화연구회’가, 1987년에는 「늘푸른」과 「향민문학」이란 문학 소식지가 창간되었다.
‘우리문화연구회’의 등장은 83년경부터 시작된 연세대 학생들의 농촌활동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83년경부터 학생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시작된 대학생들의 농촌활동은 87년에 이르러서는 대중적인 사업으로서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거창에서는 양항교회가 있는 남하면 살목마을에 처음으로 농활대가 들어왔다.
이곳에 들어온 농활대는 농사일을 도울 뿐만 아니라 농민들을 ‘의식’화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특히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84년에 시도된 풍물 강습은 이 마을 청년들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읍내에 거주하는 몇몇 청년들도 참가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강습회에 참여했던 살목마을 청년들은 이후 ‘살목풍물패’를 구성하여 자체 풍물패를 운영하였다. ‘살목풍물패’가 연습 장소로 썼던 거창읍 한들에 있는 비닐하우스에는 함께 풍물강습회를 수강한 거창읍에 거주하는 청년 한○○ 등이 드나들며 자체 강습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창단한 거창 기독교 청년회 풍물패 ‘휘모리’를 모태로 1987년 ‘우리문화연구회’를 창립하였다.
1988년에 이르러 읍내에 사무실과 연습실을 갖춘 공간을 가지게 되면서, 다양하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확충하여 문화 운동 단체로서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 널리 알려지는 문화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매년 사물놀이 등의 문화공연을 발표하고 청소년들과 직장인들에 대한 풍물 강습과 농민회 등의 사회운동 단체의 집회나 행사 때에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창립 이후 1987년 6월 ‘제1회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추모 위령제’ 공연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매년 정기 공연과 지역 단체와 연계한 기획 공연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초기 대표적인 공연으로는 1989년 합동 판굿 「북소리, 목소리, 우리 소리」가 있다.
1987년에 발간된 문학 소식지인 「늘푸른」은 당시 고제 농협에 근무하던 시인 백○○가 지역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그 주요 지도자들의 추천을 받아 민주당 공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면서 발행이 중단되고 만다.
이시기 「늘푸른」과 별도로 학생운동 출신 문학청년 이○○가 중심이 되어 발행한 「향민문학」이 선을 보였는데, 이 문예지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사상을 소개하는 글을 싣는 등 이념지향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향민문학」은 3차례의 발행을 끝으로 동인들이 해산하게 된다.
하지만 88년부터 양적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1988년 ‘거창문학회’가 창립되고 거창지역의 현대 문학은 ‘거창문학회’를 중심으로 1988년 7월 12일 「거창 문학 소식지」를 발행한다. 그 뒤에 문예지 「거창 문학」은 거창군 문화공보실 발행 창간호를 줄기로 삼고, 그해 12월 30일 문학회의 ‘실질’적인 창간호인 제2호를 발간하였다.
이 무렵부터 ‘'창 문학’의 발간에 거창문화원과 군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거창 문학 동인들이 군내 예술제인 아림예술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지역 내에서의 위상을 높여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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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유영재, 「지역 사회운동의 전개 과정 : 거창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운동의 계보학』,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2000)
2. 사진 자료 제공 : 한대수, 백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