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마을의 조산(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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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마을의 조산(조탑)
  • 한들신문
  • 승인 2020.05.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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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거창 사람들은 재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을 멈춘 채 봄을 맞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재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돌탑을 쌓아 들어오는 화를 막고 나가는 복을 잡았다. 화와 복은 가장 허한 길로 들고 난다고 믿었다. 그 길목으로 드는 질병, (),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화를 막고자 했다. 이런 돌탑은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강원도, 그리고 제주도에 분포한다.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조산(조탑), 충청도에서는 수구막이, 제주도에서는 방사탑 또는 거욱대라고도 불렀다.

거창 지역 마을과 생활의 특징 중 하나가 마을마다 산에서 흘러내린 돌이 많은 편이므로 조산(조탑)이 많은 것이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조산은 마을의 정주 공간에서 비보(裨補,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진호(鎭護, 난리를 진압하고 나라를 지킴) 그리고 방액(防厄, 앞으로 닥칠 액운을 미리 막는 일) 등의 기능을 띠고 인위적으로 만든 산이다. 이를 조산당이라고도 한다. 더 정확히는 산으로 인식되는 돌, 혹은 흙무더기이다.

풍수지리로 보아서 공허하고 취약한 지점에 산을 만듦으로써 그곳을 보충·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이 곧 조산이다. 대부분 마을은 자연적으로 완벽한 풍수형국을 갖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을의 앞으로 수구(풍수지리에서, ()이 흘러간 곳)가 열린 경우가 많고, 좌청룡의 지세가 부족하면 다양한 형태의 조산을 만들어 부족한 풍수 요소를 보강한다.

예를 들어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있는데 좌청룡의 한 부분이 꺼져 있다고 판단하면면 그곳에 흙, , (나무) 등을 산 모양으로 만들고, 마을 입구가 너무 열려 있으면 좋지 않은 기운을 막기 위해 장승이나 돌탑, 신목 등을 만드는 것이다. 조산에는 크게 마을 숲을 조성하는 형태부터 동수나무, 누석단, 돌탑, 장승, 솟대 등을 만드는 것이 해당한다. 조산은 풍수의 비보(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다.

거창 지역에는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산은 주상면 거기리, 주상면 임실, 고제면 원봉계, 웅양면 동호리 등 골짜기가 긴 곳에는 어김없이 하나씩 만들어져 있다.

주상면 거기리 조산(성황단) :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주상면 거기리 조산(성황단) :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주상면 임실 마을 조산
주상면 임실 마을 조산
웅양면 동호리 조산
웅양면 동호리 조산

조산의 모양은 지름이 56m이며, 높이는 34m 정도로 자연석을 둥글게 쌓아 올라가면서 점점 좁게 쌓아 올렸다. 마지막 꼭짓점에는 한 개의 돌을 중앙에 상투처럼 세워 놓기도 하고, 마을에 따라 3개의 돌을 세워 놓은 원뿔꼴을 보이기도 한다. 이 돌무더기를 누석단(累石壇)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적석탑(積石塔)이나 무덤 모양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섣달그믐에 마을의 당산에서 풍물을 잡고 대를 잡아 신의 내림을 받아서, 신대가 가는 대로 따라 서서 멈추는 집의 주인을 제관으로 삼았다. 또 마을의 유사가 제관이 되는 곳도 있었다. 제관은 1명 또는 3명이 맡았다. 제관은 제수를 준비하고 제삿날까지는 근신하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 전날 당에 금줄을 치고 주변에 황토를 뿌려 부정을 막았다. 제물로는 마른 명태, 조기, 과일, 떡 등을 쓰고 밥과 탕을 준비하였으며, 누린내 나는 고기는 쓰지 않았다.

정월대보름 마을 앞 조산에서 제사를 지내를 모습 (주상면 임실)
정월대보름 마을 앞 조산에서 제사를 지내를 모습 (주상면 임실)

제의 절차는 일반 제사와 비슷하게 하였지만, 특별한 축문은 없고 백지[소지]를 태우기도 하였다. 때에 따라 마을의 할머니들이 와서 소지 종이를 태우면서 손을 비비며 주문을 외우기도 하였는데, 마을의 무사태평과 동민 가가호호의 풍요와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곳이 많으나 곳에 따라서는, 금줄을 치고 풍물을 잡히고 지신밟기 시작을 이곳에서 하는 곳도, 없지 않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누가 갖다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약간의 음식이 놓여 있는 곳도 종종 볼 수 있다.

조산과 서낭당이 함께 있는 곳은 보기 드물다. 서낭당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두 개의 돌을 얹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조산은 전문가가 일삼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조산을 마을 공동체 신앙의 중심이 되는 제당(祭堂)으로 쓰는 곳도 없지 않다.

조산은 마을의 수호신 또는 마을의 구심점을 잡는 당산나무와 겹치거나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점점 쇠퇴해가는 요즘 세태에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신앙으로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늦봄 조재원(문화 칼럼니스트)
늦봄 조재원(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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