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평빌라 이야기 스물세 번째 】자취, 집보다 사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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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평빌라 이야기 스물세 번째 】자취, 집보다 사람 1편
  • 한들신문
  • 승인 2020.05.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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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강자영(가명) 아주머니가 시설 바깥에서 자취합니다. 시설 정원에 속하고 지원을 받으며, 형편 따라 일시 시설에 들어와 지낼 수 있고,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자취 접고 시설 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칠 년 전 이사 왔습니다. 부모·형제 소식은 없고, 어릴 때부터 시설에 살았습니다. 그 세월이 오십 년, 이전 시설이 아주머니 고향이고 친정입니다. 속상하면 이전 시설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아주머니가 자취합니다. 시설 밖에서 자취하는 사람을 보며 꿈을 키웠는가 싶습니다. 2015년 백 씨 아저씨가 자취한 후로 나가 살겠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 백 씨 아저씨가 동기였지만, 자취의 발판은 아주머니 둘레 사람입니다.

아주머니는 신발 가게에서 일합니다. 신발 먼지 털고 바닥 쓸고 유리문을 닦습니다. 한 시간 정도 일합니다. 퇴근길에 단골 미용실 들러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 옵니다. 미용실은 아주머니 사랑방입니다. 오후에는 마을회관 한글 교실에 갑니다. 여기도 몇 년 다녔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가는데, 이사 올 때부터 다녔으니 칠 년 되었습니다.

아주머니 곁에 사람이 많습니다. 직업, 신앙, 취미, 미용……. 아주머니 일상을 함께하고 돕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아주머니 자취를 의논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취를 거들고 돕게 할 겁니다. 자취 후의 삶도 그럴 겁니다.

김정숙미용실, 단골 미용실이자 퇴근길에 들르는 사랑방입니다. 원장님이 아주머니를 잘 알고 귀하게 대합니다. 아주머니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자취하겠나?” 아주머니에게 여러 번 들었지만, 시설이 나서서 자취를 돕는다니 원장님이 염려합니다. 마음 쓰이겠죠. 그러면서도 근처 셋방을 소개했습니다. ‘미용실 이모라 부르는 미용실 직원과 가봤습니다. 방 둘 거실 하나, 바로 이사하면 될 정도로 살림이 있고 미용실에서 가까운 게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새까맣게 핀 곰팡이에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미용실에서 자취를 꺼냈고, 원장님에게 소개받은 집을 둘러본 뒤 아주머니 마음이 시설을 떠났습니다. 20159월이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떠난 마음을 따라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미용실 손님에게 추천받아 삼화아파트 일대를 다녔고, 주택에 사는 어느 권사님에게 부탁했고, 길에서 마주친 지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갈 곳과 만날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20161, 신년 맞아 목사님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직장 생활을 전하고 자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작년에 몇 곳 알아봤고 올해도 찾는다고 했습니다. 세놓는 성도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이 더 알아보며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20163, 시설 밖에서 자취하는 박 씨 아저씨가 한두 집을 알아보고 연락해서 가봤습니다. 방이 작고 화장실과 세면장이 공용이었습니다. 부엌은 수도만 있고.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에 갔습니다. 거기는 이미 나갔습니다. 아저씨가 고마워서 시장 순대국밥을 대접했습니다.

직원의 관심이 온통 아주머니 자취방에 있습니다. 벽보, 신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자만 나와도 솔깃합니다.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방 구한다는 말이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전봇대에서 사글셋방 매물을 보고 아주머니와 함께 갔습니다. 주인집에 딸린 집입니다. 방 두 칸에 화장실과 부엌이 실내에 있고 기름보일러였습니다. 골목을 나오며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싫은 기색이 분명합니다. 근처 다른 집을 보러 갔더니, 주인은 없고 이웃이 좋은 얘기를 하지 않아서 돌아섰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주머니가 한글 교실 회식하고 강사 자가용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자취하면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 사야 하니 이런 글자를 공부하라고 알려줬어요. 시금치, 콩나물, 오이, 가지…….” 한글 교실에서 강사가 아주머니 자취를 돕습니다.

적금이 만기 되었습니다. 적지 않습니다. 은행에 들러 정기예금으로 전환했습니다. 은행 직원이 서명을 부탁하자 아주머니가 썼습니다. 은행 직원이 잘 쓴다고 칭찬하니, 아주머니가 한글 교실 다닌다고 당당하게 답했습니다. 보통예금도 여유 있습니다. 봄옷 사고, 아주머니 좋아하는 고기 먹고, 살림 장만할 여유가 됩니다. 아주머니 자취를 위해 세상이 움직이는 걸 느낍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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