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의 지혜 21
상태바
[종교]성경의 지혜 21
  • 한들신문
  • 승인 2020.05.20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약학 박사 월드선교회 담임목사 박병철
구약학 박사 월드선교회 담임목사 박병철

외로움과 친구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느낌이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하는 것 같다.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없는 것 같고, 도움이 필요할 땐 더욱 도움을 받을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의지할 누군가를 찾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찾다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아무리 좋은 이웃이라도 나에겐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시 혼자가 되고, 외로움은 여전히 내 가까이에 있다. 이 혼자라는 고독감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외로움은 우리가 피해야 할 질병 같은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외로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고독감이나 외로움이 나를 압도할 때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 몰려올 때 그것을 마냥 피할 이유도 없다.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외로움을 원래 우리의 모습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떠할까? 우리의 삶, 원래의 모습이 혼자이고 외로움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 함께 살지만, 개인은 결국 혼자라는 실존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도 누군가와 함께 태어나지 않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 떠날 것이다. 모든 순간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꿈꾸지만 결국은 혼자다.

더 나아가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표현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외로움 즐김은 수많은 예술과 문학으로 표현되어왔고, 인간을 더욱 인간적이게 하였다. 이 외로움의 표현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와의 대화일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주변의 모든 외로운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한 시인이 자신의 처지를 올빼미와 참새 같은 외로운 새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시편 102:6~7).”

혼자임을 받아들이며 이웃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고 기대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싶지만, 그들 또한 내 삶을 전적으로 위탁할 만한 절대적인 존재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샘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 2:22).”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힘든 연약한 이웃들이며 모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바쁜 것이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을 때, 기대 이상의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조그마한 도움이 우리를 감격하게 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구나! 좋은 이웃 혹은 친구가 있다는 느낌이 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경험들이라도 우리를 다시 이웃을 너무 의지하지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존적인 상태의 외로움에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할 존재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이다. 갓난아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결국 일어서는 것은 아기 자신이 아닌가? 외로움 속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혼자서 일어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어나서 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리어 도와줄 외로운 사람을 찾으러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외로운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나의 소유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유익이 있고 이익이 있는 나의 대접을 남들에게 먼저 하게 될 때, 그들도 나에게 친구로 다가올 것이 아니겠는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고 섬기는 삶 자체에서 혼자 있음을 넘어서 함께 있게 됨을 느낄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