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때 생각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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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때 생각 할 것들
  • 한들신문
  • 승인 2020.06.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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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블로 젤라또 전효민
독일 베를린장벽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서
독일 베를린장벽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서

파리에서 고추장을 다 먹고 폴란드에서 한인 상점을 못 찾아 아시아 상점에 꼭 가리라 마음먹은 독일 베를린. 밤새 달린 버스로 도착하니 이른 아침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감기엔 보글보글 고추장찌개가 최고! 당장 나을 거라며 한인 상점을 찾아갔습니다.

오랜만에 거금을 들여 한국 식료품을 사고 숙소로 돌아올 때 떡볶이 두세 번은 해 먹겠군, 고추장 한 달은 쓰겠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독일 베를린의 한 호스텔에서, 작년 칠월 이집트 다합에서 한솥밥 먹으며 어울린 식구 중 독일 뮌스터 성악 유학 중인 친구와 우리처럼 긴 여행 중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다시 만나자마자 얼마나 반가운지 뜨겁게 포옹하고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온몸과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오늘 저녁엔 고추장찌개를 먹자~. 하니 와~~~. 그렇게 무궁 씨의 기가 막힌 요리로 저녁을 먹었고, 그다음 날엔 떡과 어묵을 탈탈 털어 떡볶이 한 솥을 했습니다. 만드는 중에 다 쓴 고추장 통은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빈 고추장 통을 버리며 장독에 장이 그득하면 마음이 넉넉해지셨다는 옛날 엄마들의 마음이 생각나 피식 웃었습니다. 빈 고추장 통을 버리며 벌써 다 써버리다니……. 아쉬운 마음이 슬그머니 오는데 문득 그간 받아 온 많은 것, 제게 거저 주신 분들을 떠올랐습니다.

셀 수없이 많은 것,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 때론 너무 많아요 하고 사양하고 싶을 만큼 때론 너무 자연스러워 감사마저 무뎌질 만큼 그렇게 주고 또 주시던 사랑 많은 분들과 기쁘게 받아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살아온 지난 삼십 년, 아쉬운 마음은 어디 갔는지 이렇게 나눌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할 여력과 기회가 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에요

빈 고추장 통을 버리며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생각할 것이 이거구나! 배웁니다. 스물넷부터 제 안에 있는 물음은 이렇게 많이 받는데 죽을 때까지 갚으며 살아도 다 갚을 수 있을까?’ 다 못 갚고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만 사랑 빚 갚는 기회는 솔선하여 선점하고 싶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그 기회를 누리고 싶습니다. 빈 고추장 통을 버리며 풍성한 마음으로 미소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2015.01.22. 독일 베를린


여행자의 신분이 아니면 간절해지지 않는 것이 한국 음식인 것 같습니다. 흔해 빠진 고추장이나 라면 수프가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절실해집니다. 어쩌면 먹는 것에서 그리움이라는 욕구까지 해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직접 만든 맛있는 고추장도 아니고 슈퍼에 파는 공장형 고추장 한 통에서 별생각을 다 했지만, 확실히 뭔가 좀 부족하고 모자란 상황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자 해 놓고 어쩐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것을 기꺼이 거저 내어 주는 착한 사람들 속에서 받기만 하며 사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저도 분발해야겠습니다.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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