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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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
  • 한들신문
  • 승인 2020.06.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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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건강 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 김토아
거창군 건강 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 김토아

다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보통 뭐 하세요? 그런 노랫말 있잖아요.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노래를 부르거나 신나는 음악 듣거나, 쇼핑하거나 다양하게 푸는 방법이 많잖아요. 전 그럴 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셔요.

아무 생각 없이 창가에 앉아 멀리 바라보고 커피 한잔하는 게, 그게 행복 따로 없더라고요.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했었는지 생각도 안 나요. 저희 할아버지 말씀대로 제가 한 달 되었을 때부터 커피 먹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커피숍 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수제 커피라고는 할아버지가 직접 볶아서 직접 내린 그런 커피였어요.저도 초등학생 때부터 커피 타는 방법 배웠어요. 할아버지만큼은 못 했지만 그래도 맛있어요.내 인생이 어떻게 보면 커피하고 동반이었죠.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 향기 맡고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커피하고 애착이 좀 있어요. 누가 그랬는데요 제가 커피 중독자라고, 제 생각엔 중독자보다 그냥 애착일 것 같아요. 커피 향을 맡으면 안정감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지곤 했어요.

한국에 있으니 더욱더 커피를 좋아하게 되고, 커피 향 맡으면 왠지 고향도 생각나게 되고 바쁜 일상 때문에 그동안 잊은 내 추억들도 생각나게 되고, 옛날에 학창 시절도 생각나게 해준 그 커피 향 너무 좋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누가 한국 오면 저에게 그리 커피 많이 보내주었어요. 베트남에서 커피 유명하잖아요. 덕분에 다양한 커피 맛을 보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커피집 손녀라는 게 베트남사람이 보는 시선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저는 대개 자랑스러워요. 커피 덕에 먹고 살고 커피 덕에 학교 다니게 되었고, 커피 덕에 아침마다, 저녁마다 앞집 마당에 사람들 모여들고. 커피 덕에 지금 할아버지 보고 싶어집니다. 할아버지 나이가 이젠 여든세 살. 아직도 커피 만들고 계시고 죽을 때까지 커피 만들겠다고 하는 할아버지가 너무 멋있으시고 존경스럽습니다.

한국에서 15년째, 베트남 있을 때 18년보다 더 짧은 시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나한테는 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어요. 답답하고 힘들고 지쳤을 때 커피생각 나는 이유가 글 쓰면서 알게 되었네요.

간만에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쌀쌀한 날에 앉아 옛날 추억 떠올리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나의 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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