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신승희
또옥또옥
내 몸에서 숨기지 않고 드러낸 욕망이라곤
그거 하나였다
자식들이 벗어 던지고 간 박물관 답사 기념 티셔츠를 입고
비좁은 고랑에 앉아 감자꽃을 솎으면
티셔츠가 가린 허기가 굽은 등허리까지
감자 꽃무늬 되어 촘촘히 박혀온다
‘죽어야 살아나는 곳’ - 박물관*
읽어내지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바다 건너온 설명서보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조각이 훠얼 낫구나
몇 겁의 세월을 거슬러 가는 일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견디며
작품 속 여백이 되어야 했던 세월을
더듬거리며 더듬거리며 기록할 수 있다면
“꽃을 따내야 알이 굵어지는 법이란다”
고랑에 비 떨어지자 땅속에 박힌 알들이 자글자글거리기 시작했다
*박물관의 사전적 정의는 경남도립미술관 작은 책자에서 인용
『거창문학 제17호, 2006년』
일 요령이 없어 감자꽃 솎는 일도 어설픈 딸은 어미를 더 도울까, 말까. 마음속 실랑이를 벌이려던 차에 꽃 따는 소리와도 같은 맑은 빗방울이 막 떨어졌을까.
시인은 이 한 편의 시에 절대 진리나 사상을 요구하지 않으나 독자에게 생명을 향한 특별한 깨달음도 안겨준다. 살아있건, 살아남지 못한 죽음 이후의 시간마저도…….
생명을 지닌 것들에 대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어머니의 섬김,
내 것으로 욕심부리고 싶은 생의 호사도, 꽃 따내듯 모질게 따낸 세월을 건넜기에 알은 튼실히 박혀 자랐을 것이다.
줄줄이 알을 달고 나오는 것 중, 자라지 못한 알을 만질 때는 다 굳은 젖도 핑그르르 도는 안쓰러움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이고, 그래서 어머니다.
시 속에 어머니가 소재가 되는 작품은 여류시인만이 유일하게 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시어(詩語)의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성 독자들만이 느끼는 맑은 눈물 같은 전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