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이 아닌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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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이 아닌 것에 대하여
  • 한들신문
  • 승인 2020.06.1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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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블로 젤라또 전효민
2015. 01 독일 밤베르크
2015. 01 독일 밤베르크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가우디 성당) 입장권을 예매할 때 학생 한 명, 어른 한 명으로 결제했습니다. 제겐 이집트에서 만든 가짜 국제학생증이 있고 어른과 학생 가격이 제법 차이가 나 그렇게 했습니다. 가짜 국제학생증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여행 경비를 아끼는 꿀팁 정도로 대게 다 갖고 있다 해서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현장에서 표를 발권받으려고 보니 별다른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생각 아 둘 다 학생으로 끊을걸

아일랜드 더블린 기네스 하우스 입장권 예매할 때도 학생 한 명, 어른 한 명 결제했는데 학생증 검사는 없었습니다

그때 한 생각 낼 돈 낸 것도 아까워하다니……. 거참

가짜 국제학생증으로 할인받으면 돈 아꼈다고 기뻐하고 마땅히 내야 하는 성인 요금을 내면서 마치 아낄 수 있는 돈을 더 낸 것처럼 아쉬웠습니다. 성인, 학생 요금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일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기쁘거나 아쉬운 마음 너머로 내 돈이 아닌 것을 탐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그 생각이 더 자주 찾아오다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아끼는 것과 속이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니 앞으로 성인 두 명으로 계산하리라 다짐했고 때때로 그렇게 계산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여전히 아까운 마음이 있었으나 떳떳함에 당당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컸습니다

아일랜드 골웨이를 떠나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폴란드 크라코프 소금 광산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표 없이 무임승차를 하다 검표원에게 걸려버렸습니다

사정은 있었습니다. 정류장 밖 상점 아저씨에게 버스표 구매를 물으니 운전기사에게 사라고 했고, 버스에 타니 운전기사는 모른 척 운전만 하고 버스 안에 있는 표 판매기는 동전만 들어가니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버스 승객에게 지폐 주면서 바꿔달라 할까, 일단 내리고 돈 바꾼 다음에 다른 버스에 탈까, 벌써 어둑어둑한데 배차 간격이 길면 어쩌지? 몇 가지 궁리를 하긴 했지만, 궁리뿐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엔 이렇게 그냥 타고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에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얼른 도착해라~. 하면서 말입니다.

검표원에게 걸려 열 배의 벌금을 물고 나니 너는 버스에서 내려서 표를 사고 다음 버스를 탔어야 했다는 검표원 말이 제게 남았습니다

그럴 생각을 저도 했지만 무임승차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컸던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무궁 씨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는 마음에 대해 나눴습니다. 무궁 씨는 그간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에 깨어있던 마음이 어느새 어두워졌다며 요행을 바라지 않는 마음을 더 갈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귀한 공부와 깨달음을 얻게 한 이 사건이 되레 반갑고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이집트에서 만든 가짜 학생증을 잘라 버렸습니다. 마땅히 낼 돈을 맞게 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아끼자’,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에이 검사 안 해라는 말로 마땅히 행할 바를 놓치고 생활 속 정의로움으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멀어진 모습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 일상 속에서 새롭게 다가오며 종종 읊조립니다. 2015.01.24 폴란드 크라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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