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표정이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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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표정이 안 보여
  • 한들신문
  • 승인 2020.06.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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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림초 교사 정동식

코로나 19 이후로 일상에서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당연한 듯 누리던 것들을 잃거나 스스로 저어하게 되고, 바깥 활동 전반이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그 중 은근히 신경 쓰이는 한 가지는 감염 예방을 위한 필수품인 마스크에 가려 안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호흡기가 약해 어릴 때부터 일 년의 절반은 마스크를 끼고 살아 그런지, 올해 초만 해도 나는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 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예전과 직장 동료들이며 세상 사람들 다 마스크를 쓰는 요즘과는 뭔가 기분이 달랐다. 그건 착용감과는 좀 다른 낯선 불편함이었다. 생각해보니, 마스크에 가려 사람들의 표정이 안 보였다.

의사소통에서 말투,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 요소는 언어 요소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상 대화든 업무 대화든, 사람들끼리는 말과 함께 비언어 요소로 감정 교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여러 비언어 요소 중에서도 표정은 꽤 중요하다. 전에는 스치며 인사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표정으로 상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다음 대화를 어떻게 풀어갈지 또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침묵의 배려를 해주는 게 서로에게 좋을지 등의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 정보를 얻어가던 서로의 얼굴이, 반 이상 가려졌다.

마스크를 껴도 비언어 전달이 되기는 하지만, 제한적이다. 마스크 안 끼던 시절 얼굴 전체로 다채롭게 표현하고 인식할 수 있던 표정을 요즘은, 막힌 듯이 잘 안 들리는 상대방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 대화가 잠시 멈춘 순간의 정적, 얼굴 근육의 운동을 짐작하게 하는 마스크 전체의 미세한 들썩임, 양쪽 눈가에 잡히는 주름, 이마와 눈썹 사이의 움직임……. 좀 열심히 봐야 한다. 이런 제약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상대의 표정과 감정을 조금이라도 알아보려고 더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그냥 무심히 용건만 주고받으면 될 것도 같은데 오래도록 쌓인 그 전의 습관이 본능적으로 신경을 쓰게 만든다. 눈에 힘을 주고 상대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려 하고, 낯섦 단계를 넘어 이제 막 익숙해지려는 상대와 대화할 때 그 표정과 감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음에서 오는 알 듯 말 듯 한 불안감도 함께하고, 이따금 보이는 상대의 눈웃음이 그렇게 안심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사실 뭐 별문제만 안 생기면, 사는 데 지장만 없으면 표정 그거 좀 안 보여도 별일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생활에서는 표정이 적당히 가려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일 때도 있다. 마트에서 칫솔 몇 개 살 건데 굳이 다정스럽게 감정을 쏟으려면 직원이나 소비자나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안 그래도 사는 거 팍팍한데. 그냥 서로 무덤덤하니 정중하면 됐지. 나도 세상 모르는 듯이 그냥 지나가고 싶을 때는 마스크가 마음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살이 모든 장면이 그렇게 채워지는 것은, 어우, 좀 이상하다. 그냥 살 수는 있는데 뭔가 개운치 않다.

등교 개학이 시작되고 얼마 전 첫 대면 수업을 했다.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학교에서 모두가 많은 것을 지켜야 하고, 특히 마스크는 꼭 써야 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친구들과 선생님의 표정이 잘 안 보일 것이다. 나도 학생들의 표정이 잘 안 보인다. 예전에는 학생들의 표정을 살피면 오늘 기분들은 어떤지, 어떤 배려나 조치가 필요한지, 수업은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머릿속에 구상이 어느 정도 나왔는데, 요즘은 뭔가에 턱 막힌 기분이다. 온라인 개학 기간에 느꼈던 답답함과도 좀 비슷하다. 학교 전체가 비상에 가까운 상황이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생활지도가 훨씬 중요한 지금, 이런 정서적인 낯섦을 내색할 정신도 없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학생들도 새로이 바뀐 학교생활과 깐깐한 방역수칙들에 적응하느라 당분간은 이런 변화가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감정적 답답함이나 무언가가 차차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딱히 그런 정서적 갈증을 풀 대책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당분간 학교도 사회도 지금 상황에서 큰 물리적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나중에 등교 개학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르면 적절한 수업 시간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 나눌 기회를 한 번 이상은 주고 싶다. 이를테면 새로운 학교생활에서 내(우리) 마음에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부터 시작해서 나는(우리는) 나를(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꼭 쓸 만한 대책을 찾아내자는 것보다, 일단은 이런 감정적인 무언가가 왔거나 올 수 있음을 학생들이 인지하는 과정을 주고 싶은 것이다. 이야깃거리가 조금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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