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평빌라 이야기 스물네 번째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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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평빌라 이야기 스물네 번째 】소나기
  • 한들신문
  • 승인 2020.06.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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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8월 초 한낮은 정말 찜통더위다. 이태수 씨가 점심 먹고 밖에 나갔다 오겠단다.

지금 너무 더워요. 제가 조금 있다가 배용호 아저씨한테 갈 일이 있으니까, 나갈 때 차 태워 드릴게요.”

태수 씨는 손사래를 치며 혼자 가겠단다.

그럼, 너무 더우니까 우산이라도 쓰고 가세요.”

우산을 챙겨서 나갔다.

배용호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여태 걷고 있는 태수 씨를 만났다.

태수 씨, 더우니까 차 타고 가요.”

태수 씨는 그냥 가라고 손짓한다.

늦은 오후, 하늘이 흐리더니 천둥 치고 비가 내린다. 밖에 나간 태수 씨가 걱정이다. 다행히 우산을 들고 가서 시름은 놓았다. 창문 밖 저 멀리 태수 씨가 휘청이며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차분히 걸어도 몸의 중심이 흔들려서 보는 이가 불안한데 저래 심하게 휘청이면 무슨 일이 날 것 같다. 집에 돌아온 태수 씨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천둥이 치지요?”

태수 씨가 전하고 싶은 말을 짐작했다. 틀렸다. 태수 씨는 여전히 위쪽을 가리키며 급하게 옥상으로 올라간다. , 옥상에 널었던 빨래가 생각났다. 그제야 뒤따라갔다.

태수 씨, 미안해요. 빨래 널어놓은 걸 깜박했어요.”

태수 씨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킨다. 아마 빨래 널어놓은 걸 깜빡했다는 말인 것 같다. 태수 씨와 둘이서 비를 맞으며 옥상의 빨래를 다 걷었다. 이제 비가 오면 옥상이 생각날 것 같다.

 

201988일 일지, 박진숙, 발췌·편집


소나기를 만난 태수 씨의 발걸음이 급하다. 읍내 나가는 길 어디쯤에서 소나기를 만났겠다. 한여름 뙤약볕에 자동차를 뒤로하며 한사코 나서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을 텐데,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더라도 태수 씨의 발걸음은 옥상의 빨래를 걷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양팔을 흔들며, 태수 씨는 걸을 때 양팔을 흔들어야만 한다, 양팔을 흔들며 돌멩이를 차듯 내딛는 걸음은 급하지만 느리다. 도움닫기는 여느 사람 두 배지만 보폭은 남들 반걸음이니 그 걸음을 짐작한다.

태수 씨는 느린 걸음을 재촉하여 돌아왔다. ‘내 빨래가 아직 옥상에 있어서 돌아왔다. 위태한 걸음이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삶을 가꾸는 걸 막지 못한다. 태수 씨가 위태한 걸음으로 두 손에 쟁반을 들고 가더라도 도와줄까요?’ 하고 물어봐야 한다. 그 순간은 온 힘을 다해 자기 삶을 가꾸는 중이니까! 샤워할 때도 세탁을 할 때도 밥을 할 때도, 그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여긴다면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옥상의 빨래를 잊은 박진숙 선생님의 망각이 고맙다.

인간은 3초 후를 알 수 없다.’ 어느 소설에서 읽으며 설마 했다. 3초 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책장을 넘겨도 ‘3초 후가 아른거려 책을 덮었다. 그래, 인간은 3초 후를 모른다. 소나기에 홀딱 젖었다, 버스를 놓쳤다, 걷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다, 널어놓은 빨래 걱정에 헐레벌떡 돌아왔으나 속절없이 비를 맞았다. 월평빌라 입주자의 이런 소식은 반갑다. 3초 후를 모르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기록을 읽다가 반가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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