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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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언니”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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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건강 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 김토아

언니~ 국적 신청 어떻게 해요?”

언니~ 체류연장 어떻게 해요?”

언니~ 남편하고 싸웠어요!!”

언니~ 번역해 주세요

나의 일상에서 거의 매일 듣고 있는 말입니다, 2006년도 한국에 입국했을 때 거창에 결혼이민자 몇 명이 없었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생기기 전이라 나도 힘들 시절이 있었죠.

나도 번역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남편하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 나 다 라 밖에 몰랐던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다 나를 욕하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잘 살려면 한국말을 잘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고 한국어만 열심히 배웠습니다. 빨리 배우고 싶은 나의 욕심에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 열심히 했었습니다.

역시 열심히 하면 못 할 게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1년이 지나 한국어 실력이 많이 좋아져서 나보다 뒤에 한국에 온 후배들에게 통역 봉사활동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겨서 한동안 나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했었고 기회가 생겨 센터 선생님들 도움으로 통, 번역 직원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거리가 생겼으니 좋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죠, 한국에 2년 좀 넘게 살았고, 아직도 어리고 어떻게 보면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한 번 더 한국에 시집을 처음 왔던 것처럼 큰 도전을 해보는 거였습니다. , 낮 없이 사건이 생길 때마다 불려나가고 현장에 가면 대상자한테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울기만 했었습니다. 나도 아직은 도움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줄 수 있겠나 싶고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커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아직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더 힘이 내 봅니다.

힘든 결혼이민자가 그렇게 많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게 되었고 다양한 경험으로 겪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실력이 쌓여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자리도 11년째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맞다는 말처럼 내가 지금 이 일을 잘하고 있는 일이 맞다 생각이 들었고 수많은 결혼이민자들을 만나서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그 세월이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니 덕에 국적 땄어요

언니 덕에 남편하고 사이좋아졌어요

언니 덕에 부모 체류연장 잘 됐어요

 

힘들고 지쳤을 때 친구들 한마디로 웃게 되었고 언니라는 이름도 이제는 낯설지 않고 내 삶의 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결혼이민자 여러분 이제는 혼자가 아닌 건강가장.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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