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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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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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 차  례 ◀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1)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2)◀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3)
고유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특별법 제정을 위하여) (2)

우리 일행은 다시 강삼재 사무총장, 김종호 정책위의장 방에 갔으나 부재중이라서 비서에게 잘 부탁을 하고, 장기체류의 목적으로 국회로 가는 길도 가깝고 여관비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내 사업장 근처인 연희동 서림장 여관을 숙소로 정했다. 소식을 들은 서울 유족 문석근, 임동섭 씨는 여관으로 찾아와 사업상 동참하지 못함을 미안해하며 먹을 것도 사 오고 약간의 비용도 주고 간다.

유족들이 이강두 의원 사무실에서 진을 치고 있다는 소문은 관련 상임위원들을 자극하여 123일 내무위원회에서 거창 법을 다룬다는 일정이 잡혔다. 문병현 회장과 이철수, 나와 셋이서 이철수가 상주하는 시청 뒤 사랑방 다방에서 만나 작전을 짰다. 많은 유족이 국회 앞과 이강두 의원 사무실에 대기하며 국회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 위함이었다.

123일로 예정된 내무위 회의가 113011시로 앞당겨졌다. 예정된 날짜에 내무위가 열렸다. 상임위원회가 열리면 위원장은 법안을 상정한다. 순서대로 발의한 국회의원의 제안 설명을 듣고, 소심의 위원회로 넘긴다. 이강두 의원의 제안 설명을 듣고, 장영달 의원의 일괄 법안이라는 엉뚱한 질의가 있었지만, 소위로 넘겨졌다. 다음 일정이 정해질 때까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생업을 돌보기로 하고 해산했다. 121일 민자당 당직자 회의에서, 이번 회기 내에 거창법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이강두 의원이 전화로 알려왔다.

수고하셨다고 인사하고 문 회장과 유족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정기국회 일정은 줄어드는데, 금쪽같은 시간은 흘러가는데 깜깜무소식이다. 답답하여 부산에 문 회장을 올라오라 했더니 산청에 문철주 씨와 같이 왔다. 서울에 문충현 씨 세 분은 가까운 집안이다. 125일 우리 넷이서 이강두 의원을 찾아가 정기국회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서둘러 달라고 졸랐다. 우리 앞에서는 관련 의원들에 전화를 걸며 법석을 떤다. 1213일로 일정이 잡혔다. 문 회장과 문철주 씨는 13일 날 만나기로 하고 돌아갔다. 1212일 권익현, 권해옥, 노인환 의원의 반대가 심하니 유족들이 설득을 해줬으면 하고 이강두 의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둘러 국회로 가서 관련 의원을 만나려고 했으나 부재중, 만날 길이 없다. 비서들한테만 협조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13일 날 국회 내무위가 거창사건 특별법 다루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하루 전날 신원과 부산에서 유족들이 상경한다. 신원 유족은 버스로 남부터미널에 내리면 점심시간이라서 점심을 해결하고, 지하철이나 택시로 국회 의원회관 휴게실로 오게 하고, 부산 유족은 기차로 오기 때문에 영등포역에 내려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했다. 전 화 393-4125번은 유족들의 중간역할로 이용하는 연락처이기 때문에 신원, 부산, 서울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해놓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지금은 휴대전화가 있어 편리해졌지만, 그때는 그것으로도 편리했다. 신원, 부산, 서울 유족 20여 명이 의원회관 이강두 의원실로 들어가 내일 있을 내무위 회의를 지켜보기 위해 유족들이 대거 상경했음을 알리고, 연희동 서림장 여관으로 왔다. 워낙 손님이 없는 여관이라서 사람이 많아도 웃돈을 많이 요구하지는 않았다. 12월 서울의 밤은 추웠다. 아무리 추워도 아침은 왔고 내일을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 여관 주변에 아침을 파는 식당이 있어서 식사하고 공무원 출근 시간에 맞춰 이강두 의원 사무실로 갔다. 오후 2시에 내무위가 열릴 예정이라고 비서가 전해왔다. 이강두 의원사무실에서 지루하게 기다려 오후 2시가 되어도 내무위가 열리지 않았다.

오후 3시가 지나 거창법이 만장일치로 내무소위를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안건으로 상임위에서, 이강두 의원의 제안 설명을 듣고 토론으로 들어갔다. 발언자인 합천의 권해옥 의원, 경기 송탄의 김영광 의원, 자민련 원내총무 한영수 의원, 최근에 민자당 전국구를 승계한 이수담 의원이 유사 사건 운운하며 이의 제기를 하였고, 김용태 내무부 장관은 반대에는 변함이 없으나 의원님들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지금 국회 앞에는 산청·함양 유족들이 버스 두 대로 올라와, 자기들도 거창과 같이 다뤄달라고 농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소위에 묶어놓고 심도 있게 검토하자고 했다.

김기배 위원장은 소위에서 재심하도록 하는 데 이의가 없느냐는 물음에 이의 없다는 의원도 있었다. 재심의 방망이가 탁탁탁공든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너무나 허무했다. 나는 44년을 덤으로 살았다. 민의가 악인으로 만든다. 지금 죽는 들 여한이 있겠는가? 누군가가 하나 죽어야 할 것 같다는 때가 온 것 같다. 문병현, 문홍환, 문충현, 문철주, 이철수, 문병언, 김운섭 7인은 비장한 마음으로, 국회 본관에 있는 민자당 수석 부총무 권해옥 의원 방을 향해 쳐들어갔다. 내무위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권 의원과 마주쳤다.

개새끼야, 인근 지역 국회의원이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무슨 이유로 반대를 하느냐?”

, , 이 사람들이 왜 이래?”

몰라서 그래 이 개새끼야.”

보좌관이 말조심하라며 덤볐다. 별안간 달려드니 당혹스러워했다. 사태가 험악해졌다. 국회 청경들이 몰려왔다. 끌어내려는데 권 의원이 말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왔다. 네가 거창사건을 아느냐?”

악에 받쳐 거세게 달려드니까, 기세등등하던 권 의원이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국회 수석 부총무가 그렇게 대단한가, 고대광실(高臺廣室) 같은 사무실에, 양쪽으로 늘어놓은 으리으리한 소파들은 모두 국민이 낸 혈세인 것을, 소외당한 백성이 죽기를 각오하고 거창사건 특별법 반대 발언 이유를 물었다. 산청·함양을 제치고 거창만 법을 제정하면 권익현 의원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며, 지금 산청·함양 유족들이 버스 두 대로 올라와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라는 것이다.

그 지역 국회의원 한 사람과 법안접수도 하지 않은 산청·함양 때문에, 수십 년을 매진(邁進)해온 거창사건 특별법을 유보(留保)시키다니 말이 되느냐? 국회의원 천년만년 할 줄 아느냐? 당신은 국회 밖에만 나오면 우리 유족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극한 협박을 하는데도 잘 몰랐다. 앞으로는 적극 협조하겠다.

국회의원이 저자세로 나오는데, 순진한 유족들은 금방(今方) 순한 양이 되었다. 1218일이면 회기가 끝난다. 5일 남았다. 알았다. 국회의원의 상투(常套)적인 말인 줄 알면서 어찌하겠는가 협조하겠다는데 믿는 척하면서 물러나야지, 집으로 돌아와 김용태 내무부장관 집에 전화를 걸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안 들어왔다. 거창사건 유족이라 하니까 부인을 바꿨다. 장관 부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거창 양민학살을 아느냐? 언론을 통해 본 것 같다고 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떼죽음을 당하여 명예회복법이 국회 내무위에서 오늘 심의를 했는데, 주무장관이 반대하여 유보되어 수많은 유족을 울렸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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