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귀국, 격리 생활, 재난구호품 그리고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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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귀국, 격리 생활, 재난구호품 그리고 감사함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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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돌아왔다. 멀리 캐나다에서. 2년 만이다. 하지만 14일 동안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이미 일주일 전에 캐나다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음성이었다고 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고 했다. 인천 공항에서 귀국 절차가 일사천리였다고 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르게 정말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 한국인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공항버스로 광명역으로 곧장 이동시켜주었다고 했다. KTX에서도 별도의 차량에 태워졌다고 했다. 그렇게 동대구역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사전에 미리 군청에 신고했었다. 군청에서는 딸의 카톡 아이디를 알려달라 했다. 소방서와 연계시켜 주었다. 소방서에서는 딸이 동대구역에 도착하는 시간에 특수하게 마련된 119 차량으로 동대구역까지 가서 미리 기서 기다려 주었다가 딸을 데리고 거창에 와 주었다. 10시까지 도착하면 곧바로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했다. 그 시각 이후에 도착하면 일단 귀가했다가 3일 안에 개인이 직접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10시 전에 도착해서 119 차량은 곧장 보건소로 이동했고, 검사까지 다 마무리했다. 별도로 보건소와 집 사이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조심스레 오가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혹여 원하지도 않는 민폐를 끼칠 수 있으므로.

특히 소방서에서 수고가 많았다. 동대구역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었다. 아이를 만나서 동대구역에서 거창으로 출발한다고 전화를 주었다. 거창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었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마치고 보건소에서 집으로 출발한다고 전화를 주었다. 집에 거의 도착한다고 전화를 주었다. 한 과정마다 연락을 주어서 불안해하는 가족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보건소에서도 밤늦은 10시까지 대기했다가 검사를 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3일 안에 전화로 알려 준다고 했다.

아이 전화기에는 자가격리안심관리앱이 깔려져 있다. 이것을 전화기에 설치하지 않으면 귀국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과정 하나하나마다 외교부와 군청과 소방서와 보건소가 상호 연계해서 이번 일에 대처해 주었다. 불안해하는 남은 가족에게도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체계가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일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참 잘 짜여져 있는 것 같다. 세월호로 무더기로 무너졌던 국가 시스템에 대해 새삼스레 믿음이 간다.

귀국해서 14일 동안 격리 생활 중인 딸에게 박스가 보내졌다. 재난구호품이었다. 배달하는 분이 가져와 대문 앞에 놓아두었다고 했다. 묵직했다. 열어보았다. 박스 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간식거리들이 들어있었다. 몇 가지나 들어 있나 싶어 방안에 풀어 펼쳐 보았다. 대자리 전체가 찰 정도였다.

버터링 1박스, 초코파이 1박스, 버터와플 1박스, 직화구이김 10통 들이 1봉지, 참조림, 멸치볶음, 양념깻잎, 갈비탕 2, 설렁탕 2, 육개장 2, 전복죽 2, 삼계탕 1, 음료 petitzel 4, petitzel 3, 펩시 6, 감귤주스 1, 포카리스위트 2, 물티스 큰 것 2, 뽑는 휴지 1, 햇반 8, 즉석라면 2, 김치캔 2, 다크쵸코 8봉지, 건강식 견과류 4봉지, 콘푸리이트바 4개 들이 1박스, 또 콘푸라이트바 베리요커트 4개 들이 1박스.

단순한 간식거리를 넘어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건강식도 다양하게 들어 있었다. 14일 격리 생활 동안 간식거리로는 넉넉할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그저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안내문도 들어있었다. “재난에서 희망으로라는 머리말을 달아 작은 정성을 담아 보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안내문이었다.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은 전국재해구호협회인 희망브리지삼성의 후원을 받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했다. 안내문 어디에서도 어떤 정부 부서나 장관이나 대통령 이름 한 자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선물 아닌 선물을 통해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담당할 법한 정부 부서 이름을 내밀어도 어느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회에 얼굴 내밀어 현 정부의 통치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이런 재난 상황을 맞아 대기업을 협박해서 강제로 재난기금을 내게 했다. 그럼에도 안내문 제일 하단에는 늘 대통령이나 정부 부서 이름으로 마무리하였다. 이를 통해 해당 정부나 대통령의 통치력을 미화시켰다. 일상에서는 폭압적이면서도 이런 계기를 통해 자신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억압적인 통치를 미화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현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는 이런 안내문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색할 정도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심지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그러나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했고, 그 신선함 속에 산뜻함이 은은하게 스며져 있었다. 이 정부의 높은 품격과 국민을 믿는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은근히 품어내는 향내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물씬 품어져 있는 국격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이것이 민주 정부다. 이것이 제대로 돤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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