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앉았다 차마 비워 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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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앉았다 차마 비워 두는 일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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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이선임, 시인

신원 가는 길

이선임

 

지고 있는 짐들만 가득 생각되고

이루어놓은 아무런 것도 없다고 여겨지는 날

일부러라도 신원 들목 양지를 향한다.

 

차가 스쳐 갈 찰나 간을 염두에 두었을 리 없건만

계산기를 두드리기라도 한 듯

갓 낯을 익히는 아이의 눈동자로 가만히

마중 나오는 무궁화

 

맞서기엔 너무도 세찬 역사의 바람까지

참아내기엔 힘에 부치는 세월의 더위까지

이겨낸 인내로

 

여름 들녘부터 가을 갈 녘까지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기를 쉬지 않는 바지런함으로

 

백단심 청단심 홍단심…….

돌봐준 적 없어도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 피어 빛날 줄 아는 꽃.

 

내 영혼을 송당송당 썰어

굳이 그대의 양념으로 오물조물 버물지 않아도 어느새

그대 인내와 근면과 절제와 의지와 당당함과 민첩성에다

관용까지 덤으로 안고 돌아온다

 

이럴 땐 밥이라도 든디 묵어야 돼

아버지의 뚝심까지 얻고 돌아온다.

 

화해시집 중에서


한때 무궁화 삼천리라는 말에 걸맞게 온 나라가 무궁화로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무궁화 꽃길은 사라지고 무덤이나 정자 곁에나 심었다는 배롱나무와 화들짝 피었다 놀란 듯 지는 벚꽃으로 온 나라가 뒤덮일 지경이 되었다.

꽃의 아름다움과 다양성과 장기성으로 보아도 무궁화에 이길 꽃이 없고, 씨와 꺾꽂이 등 번식력으로도 이겨낼 나무가 없는데 나라를 상징하는 꽃임에도 왜 이렇게 소외당하게 되었을까?

 

어느 계절에도 어떤 상황에도 무표정하여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소나무보다도, 긴 겨울과 이른 봄을 진딧물의 안식처로 제 몸을 제공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꽃을 피우는 무궁화의 너그러움과 인내심에 놀랄 수밖에 없는데……. 진딧물이 많이 끓는다는 게 이유라면 이른 봄에 한두 번 약제를 뿌리면 될 터인데…….

 

오늘에라도 당장 거창 읍내를 벗어나 신원 양지를 향하여 달려가 보라.

무궁화가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졌는지,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상 가는 길 등도 토종 홑잎이 말갛게 마주 서는 무궁화꽃 눈길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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