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우박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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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우박 내리던 날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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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백상하
귀농인 백상하

며칠 전 고제면과 웅양면 적하 지역에 우박이 쏟아졌다. 살면서 우박을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거로만 알았지 지금처럼 농사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필 그날은 동네 동생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하고 있었던 터라 술기운을 빌어 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호기롭게 술자리를 계속 이어갔다. 같이하던 아우들도 거의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우박이 정말 컸다. 탁구공보다 조금 작은 것들도 떨어졌고, 그것도 집중적으로 5분 이상 강한 소나기처럼 왔으니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농사를 업으로 삼은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그 심각성에 대해 무지했고, 그것이 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당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다음날 밭에 가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가지가 부러진 것도 있었고, 사과가 우박 직격탄을 맞아 절반이 날아간 것도 있었으며 더 심각한 것은 깨진 사과보다 우박이 스쳐 지나가면서, 또는 나뭇가지에 튀면서 만든 작은 흠이었다. 이것들 역시 상품으로 출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옆 밭에 있는 농부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자기 밭 홍로 사과는 약 90% 이상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농협에 피해 신고를 했다고는 하나 그 보상이란 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 그 농부도 망연자실했다. 더구나 작년 홍로는 추석이 빠른 덕분에 색을 제대로 내지 못해 추석 특수를 못 누렸고 추석이 지난 후 가격이 너무 낮아 남은 사과를 그냥 밭에 따서 버렸다고 했다. 만일 내년에도 이런 피해를 본다면 재기불능 상태가 될 거라며 낙심하는 걸 보니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사과도 어림잡아 70에서 80%는 이미 피해를 본 상태라 아내와 같이 피해 사과를 따내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고제면과 웅양면 적하 지역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았고 적하에서는 용전마을부터 송산, 신촌, 오산마을까지 피해 지역이 제법 넓었다. 이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지는 전적으로 농민의 몫이다. 군에서 피해 신고 농가만 보상금을 지급한다지만 현재 조례로 봤을 때 헥타르 당 200만 원 안쪽일 것이고 농협에서 지급하는 보상금도 여러 이유로 농민이 만족할 만한 그런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으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농민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 피해 복구 걱정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세상을 보기 힘들 것 같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해마다 냉해에, 불볕더위에, 우박에, 태풍 피해까지 다 넘어가야 수확이 되는 게 농산물인데 이런 걸 업으로 삼은 농부들이야말로 도박꾼 아닐까?” 내가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위태로운 도박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도박판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첫째는 정부의 농업에 대한 빠른 인식 변화이다. 올해부터 공익형 직불금 체제로 바꾼다지만 농부들의 체감온도는 아주 다르다. 부재지주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아직도 많은 소작제가 횡행하고 있는데 그 소작농의 일부는 농지에 대한 임대차 계약서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쌀값 문제에서 정부는 일방통행만 요구할 뿐이지 농민들과 진지한 협상 태도를 안 보인다. 농업이 도박이 되지 않으려면 농업의 공공성에 대해 인정을 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농민 대우를 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리라.

둘째는 농민의 마음이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도 하늘과 땅의 순리를 따르고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성스러운 직업임을 인식하고 자부심을 느낀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피해를 본 모든 농민이 즐거워하는 그 날이 하루 더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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