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63)「아카시아 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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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63)「아카시아 파마」
  • 한들신문
  • 승인 2020.07.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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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박은주

뽀글뽀글, 아카시아 파마를 해 볼까요?

 

책과 관련하여 제 추억이 담긴 이야기로 이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지동마을에 사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서울 사는 며느님이 안타까운 사연을 거창 지회에 보내왔는데 그 편지가 내 맘을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르친다는 것보다 말동무하며 안부를 살피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이륜자동차 면허 시험에 합격하려는 목표가 사뭇 거창했다. 숙제도 삐뚤삐뚤 글씨치곤 야물 차게 거르지 않고 하셨다.

낯가림이 사라질 즈음, 그림책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들큰하면서 향기 좋은 아카시아 꽃이 한창인 오월이었다. 떠듬떠듬 읽어가는 할머니 목소리 들으며 내 손이 바삐 움직였다. 그렇다. 이 책은 그런 묘미를 갖고 있다. 읽는 자체로 공감을 갖는 책에서 꼭 해 보고 싶은 욕망을 건드린다. 동그란 잎사귀를 떼어 앙상한 줄기에 빼곡히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놓은 할머니의 웃픈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도 할머니처럼 천천히 추억을 떠올리며 <아카시아 파마>를 읽어본다.

 

혼자 집을 보던 영남이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못생긴 자기 얼굴이 영 마음에 안 듭니다. ‘쌍꺼풀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요 볼에 새긴 주근깨가 없으면 나아 보이려나……. 마침, 엄마의 분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리저리 엄마 흉내를 내다 머리 모양이 맘에 들지 않자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파마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옆집 살던 미희가 놀러 와서 그렇게 하면 머리가 다 탄다면서 아카시아 파마를 해준다고 합니다.

동생 영수도 따라가고파서 엄마 분 바른 거 이른다며 누나를 따라나섭니다. 마을 뒷동산은 아카시아 숲입니다. 미용실 놀이가 시작됩니다. 파마 값은 살구 익으면 한 바가지 건네기로 합니다. 동생 영수는 덩달아 삽사리를 사자로 만들어 준다고 버둥거리는 개털을 엉망으로 감고 있답니다.

자 잔~. 파마를 풀어 봅니다. 영남이는 곱슬곱슬해진 머리가 마음에 쏙 듭니다. 삽사리는 헝클어진 새끼 사자처럼 북슬북슬해졌네요.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토란 잎사귀로 막아보지만 파마는 다 풀어지고 영남이는 털썩 주저앉아 울음만 쏟아냅니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무지개 걸린 하늘을 보며 아이들은 다시 아카시아 파마하러 뛰어갑니다.

 

파마가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30년대라고 합니다. 당시 파마는 전기 파마로 값은 쌀 두 섬이나 될 정도로 비싸서 부잣집이나 영화배우들만 할 수 있었죠. 그래서 아카시아 잎이 무성해지면 줄기로 머리를 감아올리는 놀이가 곳곳에서 벌어지거나, 쇠꼬챙이로 머리카락을 태운 친구들이 엄마에게 혼나기가 다반사였지요. 지금처럼 세련된 미의 기준은 아니지만, 책에서 보이는 영남이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끼는 독자가 많습니다. 배경이 되어 주는 숲의 푸름처럼 아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자연을 매일 매일 가까이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풍족하지 못하고 불편한 문화 속에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라납니다. 친구들과 놀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생각도 창의적으로 하게 됩니다. <아카시아 파마>도 자연 속에서 꽃놀이, 풀 놀이로 익숙한 놀이 문화를 파마라는 소재를 빌려 추억을 되살려 줍니다. 더불어 대대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이 책 독자의 마무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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