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거창의 근대 전환기 100년사 ③-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외세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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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거창의 근대 전환기 100년사 ③-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외세에 대한 저항
  • 편집부
  • 승인 2020.07.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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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동학농민군이 거창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안의면의 전경
전라도의 동학농민군이 거창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안의면의 전경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었는데, 지역별로 처한 조건에 따라 특징적인 면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도 지역적 특수성을 띠고 농민전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봉건체제의 위기에 따라 농민항쟁이 빈발하였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왕성하게 운동이 전개되었던 지역은 단성과 진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임술민란에서 보듯이 경상도 지역이었다. 그러나 1862년 임술민란은 경상도를 중심으로 발생하였지만, 1894년 농민전쟁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개항 이후 사회변동과 관련해서 우선 주목할 것은 면직품의 수입과 곡물과 콩 등의 수출이었다. 그런데 개항 이후의 수출품을 산지별로 보면, 쌀은 전라도 산이 70%이고, 경상도 산이 30%였고, 콩은 경상도 산이 80%였고, 전라도 산이 20%였다. 곡물 유출은 곡가 등귀, 토지 소유의 확대로, 소작 경영의 강화 등으로 농민 몰락을 가속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전라도 지역에서는 쌀 수출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이 보다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콩 수출에 치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항의 충격이 약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의 동학 세력은 전라도 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한 이후 세규합에 들어갔는데 불과 한두 달 만에 상주·예천·선산·김산·성주·하동·진주 등지를 지배하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 지역 외에도 의성·풍기·안동·봉화·남해·사천·고성 등지에서도 동학 세력은 급속히 세를 확대하고 있었다.

 

농민들이 폐정개혁과 신분해방의 기대로 앞다투어 동학에 입도하고 있던 시기에 일본은 청일전쟁을 감행하고 경상도 지역에서도 상주의 낙동과 함창의 태봉에 일본군 병참기지를 설치하면서 일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민족적 위기의식은 더욱 고양되었다. 그런 가운데 9월이 되면서 삼례 회합을 통해 남접 소속 전라도 농민군이 재차 봉기하게 되고, 이 지역에서도 낙동과 태봉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었다.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기 전 해에 열린 충청도 보은 집회에 참가한 경상도 지역 동학도의 분포를 살펴보면 상주, 선산, 성주, 김산, 진주, 하동의 동학교도가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거창과 가까운 김산과 선산, 성주를 비롯하여 인동, 지례 지역은 이미 1893년 이전부터 동학 세력이 정착된 지역이었다. 그리고 호남지역과는 달리 북접의 영향권에 있었던 영남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18947월까지는 농민군의 기포 사실이 없었다. 그러나 189455일 주한 일본공사관의 경상도내 동학당 경황 탐문 보고서에 의하면 김산·지례·거창에서 4월 중순 동학농민군의 혐의로 대구로 잡혀온 20여 명 중 3명이 동학의 주문을 품안에 숨기고 있다.는 기록을 통해 이미 거창 지역을 포함한 김산. 지례는 일본군으로부터 요주의 지역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남은 북접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남서부지역은 호남지역의 남접 농민군의 활동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동학군과 관군의 휴전이 성립된 후 6월 하순경 남원의 동학농민군이 운봉을 거쳐 함양을 공략하고 이어 안의에 들어왔다. 18941214일 안의 현감 조원식이 올린 첩보에 의하면 동학도 수만 명이 장수현을 불태우고 영봉을 거쳐 안의와 거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정부에서 영관 최응규로 하여금 포수 100명을 데리고 안의로 떠나도록 하였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오하기문에 의하면 안의 현감 조원식은 동학농민군을 환영하여 융숭하게 대접한 후 취하여 잠든 때를 이용하여 섬멸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호남 동학군은 안의 공격 이후 경남으로 들어오려고 그 길목인 운봉을 몇 차례 공격했지만, 전 주서 박봉양이 이끄는 민보군이 운봉을 수비하였기 때문에 모두 실패하여 경남 서북부 지역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안의 공략 때 호남에서 넘어온 동학군은 안의에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다른 읍에도 흩어져 들어가 활동하면서 서부경남지역 동학도들의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늦봄 조재원(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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