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온라인 수업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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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온라인 수업 아침 풍경
  • 한들신문
  • 승인 2020.07.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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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여중 교사 박정기

출근한다. 교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담임으로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에 접속하여 이름과 인증번호를 입력한다.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 초기에는 인증번호를 외우지 못했지만 이젠 외워서 입력한다. 외웠다기보다 외워졌다. 아마 아침마다 되풀이하여 버릇으로 굳었나 보다.

 

확인을 누른다. 학생 건강실태 자가진단 설문조사 화면이 뜬다. 설문에 참여한 숫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침 8시 무렵, 날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10명 안팎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숫자가 더 많다. 흐뭇해진다. 스스로 참여한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누가 자가진단 설문조사에 참여했을까? 개인별 학생 건강상태 설문조사 결과를 확인해 본다.

 

그랬구나. 늘 늦게 참여해서 전화하고 난 뒤에야 설문조사를 하는 미림이가 이번 주에는 벌써 마쳤구나. 너무 고맙다.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설문조사 참여 확인을 보면서 저 애는 원래 저래. 또 저래.” 이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 말이 학생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인지 느껴지니 가슴이 먹먹하다. 때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을 원래 그렇다고 틀을 만들었으니.

 

다음은 컴퓨터 바탕화면 속닥방에 들어간다. 반 속닥방에 글을 올린다.

어떤 날은 자가진단을 부탁드립니다.’ 또 어떤 날은 자가진단해 주세요.’

 

잠시 기다린다. 다시 확인해 본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 수에 변함이 없다. 마음이 조급해지려고 한다. 다시 본다. 숫자가 거의 변함이 없다. 기다려보자. 조급할 필요가 없잖아.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 이제 우리 반 아이들이 8시 반쯤이면 알아서 설문조사에 참여하잖아. 마음을 다독여 본다.

 

815분쯤 다시 확인해 본다. 아직도 몇 명이 자가진단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학급 속닥방에 자가진단 부탁합니다.’, ‘자가진단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말을 올렸다.

 

이젠 생각을 바꾸어 주어야 할 때이구나.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은 교사가 학생에게 부탁해야 할 일이 아니라 코로나 19’ 시대에 아침마다 학생이 해야 할 의무이다. 의무라면 스스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말을 바꿨다.

 

자가진단하세요.’

 

825분쯤 다시 설문조사 참여 숫자를 확인해 본다. 아직 몇 명이 참여하지 않았다. 반 속닥방에 올린 글을 개인 속닥방으로 바꾼다. ‘자가진단하세요.’ 마무리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두어 명은 반응이 없다.

학생에게 전화한다. 학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학부모님 속닥방에 글을 남긴다.

 

“00한테 몇 번을 전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속닥방에 글을 남깁니다. 00이 자가진단 부탁합니다.”

 

곧 속닥방에 글이 올라온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아직 자가진단 설문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 있다. 전화도 받지 않고 속닥방에 글도 남기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부모님께 전화 걸기. 미안한 마음으로 받아주신다. 그 말씀에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등교 수업을 하면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학교에서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데.

또 속닥방에 글이 올라온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반은 835분에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설문조사가 끝났다.

그렇지만 아직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조사가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니다. 다음 과정이 하나 남았다.

학년 속닥방에 글을 올리기다.

 

“2학년 3반 자가진단 마무리했습니다.”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아침마다 되풀이하는 온라인 수업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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