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삼키지 못하고 고여 있는, 그리움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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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삼키지 못하고 고여 있는, 그리움 한 입
  • 한들신문
  • 승인 2020.07.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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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염민기, 시인)

여름 숲은 그냥 오지 않는다

김병준

 

첩첩산중 명달리 저녁이 층층이나무에 얹힐 즈음

최하림夏林 시인을 찾아 뵈었다

선생은 벌써 여름 숲을 깔아 놓고 맞이하신다

인사와 함께 드린 질문

시가 막히면 어떻게 하나요

기다려야지

여자는 뱃속의 아기만을 생각하며 열 달을 기다리지 않느냐

 

시의 열병 앓는 밤

아직 내 시의 온도는 차갑다

폭포 같은 고요

자정께 마음의 발우 머리에 얹고 시를 기다리니

금방 새벽이다

새벽바람 한 줄기

멀리서 여름 숲이 걸어오고 있다

거창문학 제17, 2006


온통 짙은 여름이다. 저 숲의 초록은 계절을 견뎌온 색들이다. 그리고 여름 저녁 숲은 고요로 깊어진다.

침잠의 숲을 깔아 놓고 맞이하는 노시인과 마음의 발우 머리에 얹고 시를 기다리는 시인. 그렇게 만남의 설렘으로 한 질문. 한껏 기대한 물음에 그저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어쩜 너무나 평범한 답변이 오히려 줄탁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림과 여름 숲, 시적 언어의 재치도 엿보인다.

다들 직선의 눈으로 급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다. 삼키지 못하고 고여 있는 그리움 한 입. 너무 자주 잊는다. 시인의 말처럼 그냥 오는 것은 없는 데 말이다.

 

바다 속에서 전복따 파는 제주해녀도/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주려고/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 것을……. 서정주 시인, <시론>

 

저처럼 남겨두는 것, 기다리는 일. , 삶이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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