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것
상태바
[농민]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것
  • 한들신문
  • 승인 2020.07.29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농인 고재천
귀농인 고재천

거창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귀농인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친환경 농사로 귀농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주작물은 포도인데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이나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작기가 짧고, 다른 작물에 비해 친환경으로 짓는 것이 쉽다고 해서 선택을 했다.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 관련 친환경 자격증도 몇 개 취득하고 주위 친환경 농가에 여러 자문을 구해서 근근이 농사를 지어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수확량이 일반 관행에 비해 많이 적지만 나름 보람도 있고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작년 겨울이 따뜻해서 그런지 올해 미국선녀벌레가 급증하여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놈들이 흰색 왁스 물질과 감로를 배출하여 과실과 나무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친환경 자재로 방제를 하는데, 없어지나 싶으면 뒷날 다시 기승을 부린다, 인터넷을 뒤져 온갖 효과 있다는 자재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농사를 짓는 다른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며 농약을 칠 수도 없고라는 말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농약이라도 별 수 있겠나라는 생각으로 보통 친환경 자재로 한 번 방제하는 것을 힘들게 서너 번씩 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게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러던 며칠 전, 굉음이 들려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SS방제기로 포도밭 건너편 야산 아카시아 나무에 방제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 선녀벌레 때문인 것 같았는데, 저게 효과가 있나 싶어 방제한 자리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죽은 벌레가 꼭 흰 눈이 내리는 것처럼 우수수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간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밭의 벌레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농약 한방에 흰 눈이 되어 없어져 버린 벌레를 보니 왜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유기 농산물을 먹기만 할 때는 친환경 농사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로 새로운 변수들이 많이 생길 텐데 과연 친환경 농사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요즘 부쩍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가 먹고 바로 죽는 독한 약을 사람이 먹는 작물에 뿌릴 자신도 없으니 오늘도 밭에서 만난 선녀벌레를 쫓아내기 위해 혼자 안간힘을 써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