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데 걸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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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데 걸리는 시간
  • 한들신문
  • 승인 2020.08.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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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블로 젤라또 전효민

같은 숙소에 머문 사람들이 심심찮게 볼리비아 비자를 받으러 다녀옵니다. 물어보니 몇 가지 서류만 갖추면 비용도 없이 쉽게 받을 수 있다 합니다. 마침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오래 머무니 우리도 볼리비아 비자 여기서 받자! 마음먹었습니다이란 비자받느라고 무궁 씨 사진이 똑, 근처에 가면 사진 찍는 곳이 있을 거야. 숙소에서 몇 장 복사하다 잉크가 똑, 근처에 가면 복사하는 곳 있을 거야. 재미 삼아 살살 걸어가다 아이스크림 먹고 커피 마시느라 버스비 8페소 대신 쓴 돈이 80페소. 재미있잖아~하며 그늘 찾아 걷다 보니 어, 여기야! 하지만 아직 사진과 서류가 모자라요.

 

#1 사진

사무실 앞에서 사진관 호객꾼이 주는 종이를 들고 찾아간 사진관은 흔적도 없는 거 있죠~ 동서남북어디에 사진관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고고! 상점 주인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사진관에서 사진 찍으려고 가방 벗은 무궁 씨 어깨가 축축이 젖어 있습니다. 한참을 헤맸는데 순식간에 손에 쥔 사진에 웃었습니다. 이젠 서류 차례지요.

 

#2 서류

어디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피시방은 등잔 밑에 있더이다. 시에스타(공식적인 낮잠 시간)로 문은 닫혀 있고 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을 생각 하다가 아니지 이 참에 뭐 좀 먹자 싶어 피자집에 앉았습니다. 힘내자 힘! 비자받고 나면 다 털어 버려질 것들이야. 피자 먹을 돈이 있어 감사, 주문한 피자가 맛있어서 감사. 드디어 문 열린 피시방은 십분 단위로 요금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십일 분 썼는데 이십 분 요금 내고 숙박 예약증, 여행계획서 출력했습니다.

 

#3 비자 받기

볼리비아 사무실 106, 우리 앞에 중국인은 우표 같은 걸 붙여야 하는데 우표가 똑 떨어져서 며칠 있다 오라며 돌려보내면서 우리도 마찬가지라 하여 우짜노 하는 중에 '! 코레아!! 너넨 공짜니까 우표 필요 없어! 여권 줘!!' 그러고는 비자 신청서 작성하고 여권에 도장 찍어 다시 우리에게 건네줄 때까지 서류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볼리비아 직원.

 

#4 우리 기분

대기시간도 없이 가자마자 바로 비자를 발급받았지만 서류 준비하느라 쓴 기력이 휴지 조각이 된 허무함에 기쁘지도 않습니다. 비자를 받는 과정에 우리가 준비한 서류는 달라하고 미처 챙기지 못한 서류에 대해선 언급 없길, 그래서 일은 잘 이루어지되 우리의 수고가 쓰임 받길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큰가 생각합니다. 비자받았으니 되었다. 위로해보건만 이게 뭐야 뭐하러 용쓴 거야, 짜증이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뚱한 얼굴을 한 채 한참을 걷다 아이스크림 집에서 한 그릇 다 비우고 다시 한참 걸어 숙소 앞에 와서야 하이파이브! 볼리비아 비자받았다~~ 기뻐하기까지 감사하기까지 두 시간입니다.

 

#소감

일은 잘 이루었으되 우리의 수고가 쓰이지 못했을 때

일은 잘 이루었으되 우리의 그림대로 되지 않았을 때

마음을 잘 다독거리고 감사하며 기뻐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각자의 긴장과 짜증을 잘 다루고 함께 위로하며 손 마주쳐 웃을 수 있는 우리라는 점에서 괜시리 뿌듯합니다. 휴우~ 가자 볼리비아!

2015.3.10.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이과수 폭포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왔습니다. 길쭉하게 생긴 아르헨티나에서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니아를 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빙하를 만날 수 있는 엘 칼라파테부터 한 달간 아르헨티나를 아래에서 위쪽 방향으로 훑었습니다. 23일 동안 침대 버스도 탔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버스에 누워서 볼 줄이야..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긴 여행은 중간에 필요한 비자를 받습니다. 터키에서 이란 비자를 받았고 아르헨티나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받았습니다. 파키스탄 비자를 빼면 웬만한 건 해외에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 고생했는데 결과가 좀 허무했습니다. 원하던 걸 얻었는데 화가 났다고 할까요. 역시 노력한 과정에 대한 인정이 결과만큼이나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숨 고르고 기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또 찾아올 때 두 시간보다 더 빨리 툭 털고 웃을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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