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진마루마을에 이사 온 ‘새 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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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진마루마을에 이사 온 ‘새 댁’의 이야기
  • 한들신문
  • 승인 2020.08.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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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인생 3, 흔히들 노년이라는 시절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현실적인 예측이 가능했다. 고정수입의 축소와 고독이라는 유형무형의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 남편의 퇴직을 앞둔 6년 전부터 머릿속으로 짓고 부수고를 거듭하며 그 불편함을 원만하게 살아볼 계획을 세웠다.

생활비가 적게 들어야 한다. 마을에 살아야 한다가 최종 답안이었다. 그 조건이면 전국 어디든지 이민 간다로 결심을 하고 나니 노년으로의 입문이 한결 가벼워졌고 인연이 맺어질 곳을 기다렸다.

인연은 의외로 쉽게 맺어졌다. 지인과의 전화 통화 두어 번으로 결정했다. 거창군 웅양면 진마루 마을이었다. 땅도 보지 않고 등기를 하러 온 날은 가을 끝자락 겨울에로의 출발인 계절이었다. 셋째 아들과 함께 마을 중앙 너른 터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청량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더니 밝고 환한 해의 빛이 정갈하고 따뜻한 기운으로 인기척 없어 적막한 마을을 낯설지 않게 해 주었다. 이곳의 햇빛과 햇살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그리고 5년 뒤 2018113일 비슷한 계절에 이민 이사를 완료했다. 매일이 새롭던 얼마 후, 대동회의 소집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석한 나는 전에 없었던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아아... 멋지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다! 참석자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고 참여자 모두가 의결권이 있다. 우리 마을만의 세상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을까! 이렇게 마을을 지켜왔구나! 인생 모두 혹은 절반 그 이상을 이 마을에서 살아내서 살려냈구나! 적어도 이 마을에 관한 한 전문인들이셨다. 깊이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마을의 멤버십은 으로 사는 일이 아니었다. 나 같은 이민자는 반드시 으로라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귀촌한 혹자가 이를 두고 텃세라고 한다면 분연히 나서서 변명하리라! 길이 닦이고 확장되고 포장되고 물이 나오고 배수가 되고 전기가 들어오고 통신선이 연결되고... 생활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이 모든 일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아내지 않았다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곳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일이 그리 쉬운가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공동체적으로도 숱한 고비를 넘고 넘어 수고와 희생을 치르고서야 마을이 보전되어 왔음이 무뎌진 손가락 마디마디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나는 그 행간을 읽었다. 어마 무시한 역사였다. 마을 회관에 모여 대동회의를 하는 내내 마을 선배들의 모습은 당당해서 훌륭했고 수고한 자의 자유로움이 근사했다.

진마루 새댁은 그날부터 40가구 80여 명의 주민들이 선배임을 인지했고 인정했다. 그래서인지 마을을 오가다 만나지는 어른 한 분은 환갑을 넘긴 내게 새댁이라 명명하셨다. 푹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아마도 마을 선배들을 대하는 나의 품새가 그리 보였나 보다. 싫지 않았다. , 이 마을의 새내기임이 자명하다.

마을의 생성이 500년쯤 되었다 한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특별한 권세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개인이나 가문이 없다는 것이다. 경험컨대 개인이든 가문이든 혹은 무리든 우월감을 행사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우리 인간은 비생산적인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실력자와 추종자 그리고 다수의 피지배자로 계층과 당파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 그런 실력자나 가문이 있어 누군가의 권세법이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었다면 이제 막 주민이 된 나는 당분간, 혹은 상당기간 실력자들의 눈치를 보며 불편한 시절을 한동안 살아야 했을 것이고 살아갈 내내 당파의 세력싸움에 이리저리 휘둘렸을 게다. 끔찍한 일이지만 내심 각오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어른들도 현존하는 몇몇의 일가도 이장님도 전 이장님도 전전 이장님도... 소위 을 부리는 분들이 안보였다. 유무형의 경계는 있어도 담이랄 것이 없고 머뭇거리게 하는 대문도 딱히 없는 마을에서 노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런 행운이!

 

가장 고령인 어른 한 분께 인사차 찾아뵈었을 때다.

아이고... 우리 마을에 오신 분을 내가 먼저 인사하러 갔어야 했는데...”라고 하시며 미안해하셨다. 진마루 새댁은 이 어른의 품격 있는 겸양의 인사를 두고두고 배워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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