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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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0.08.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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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 차  례 ◀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2)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3)◀
고유제(1)◀
고유제(2)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특별법 제정을 위하여) (3)

천년만년 장관 할 것도 아닌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억울한 유족들 한이나 풀어 달라, 거창 법이 제정되어 혹시라도 비난받는 일이 생기다면 유족들이 설득하겠다. 김영삼 대통령도 반대하지 않으니 야당과 합의하여 하라 하였는데, 외국 방문으로 부재중인데 주무장관이 왜 반대를 합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장관 부인이라 그런지 끝까지 말을 들어주고 교양이 있어 보였다.

1214일 김영광 노인환 권익현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모두가 부재중이었다. 권익현 의원은 꼭 만나야 되겠기에 사무실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문병현 회장이 안에서 바둑알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모른척하고 있으니까, 동료의원과 바둑을 끝내고 배웅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있는데 없다고 해 기가 막혔다. 일단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들어갔다. 거창 법을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따졌다. 반대하지 않았단다. 있는데도 없다 한 인간이 무슨 변명인들 못하랴 인근 지역 아니냐? 협조 좀 해 달라.

알았다.”

이때까지도 산청, 함양사건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거짓말한 비서진들이 미안해하였다. 문 회장이 서운해 따지려는 것을 이들이 무슨 죄인가 능글맞은 주인 놈이 그런 것을 달래서 물러났다. 1215일 신원에서 14명의 유족이 올라와서, 이강두 의원 사무실에서 서울 부산 유족들과 합류하였다. 우리의 법을 반대하는 의원들을 찾아가 항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권해옥 의원이 나타나서 지난 13일 날 내무위에서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이번 회기 내에 통과시킬 테니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 한다. 정기국회 회기가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판국에 너무 자신 있게 말을 하기에 박수까지 쳐졌다. 서울 부산 신원 유족 20여 명이 계획을 취소하고 여관으로 물러섰다. 1216일의 날이 밝았다. 김윤환 민자당 대표를 찾아갔다.

우리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이번 회기에 처리하기로 당직자 회의에서 결정했으니 야당이나 잘 설득시키라는 것이다. 19951217일은 일요일이었다. 14177차 정기국회 회기 하루를 남겼다. 할 일 없이 지루한 일요일을 보냈다. 18일 오전 10시에 내무위 회의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회의원회관 이강두 의원 사무실에서, 상임위원회 회의는 TV 화면은 나오지 않고 말소리만 들리는 회의를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 10시의 회의가 1140분에 열렸다. 거창사건 특별법은 세 번째 안건으로 채택되어 권해옥 의원이 제안 설명을 했다.

심의가 끝난 법안이라서 이의 제기하는 의원이 없으니까 쉽게 통과 방망이가 탁 탁 탁법사위로 넘어갔다. 법사위에서 이강두 의원의 제안 설명이 있은 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 의원은 이법 이대로 보내도 되느냐고 했다. 무슨 연유인지 많은 논란을 하다가 박희태 법사위원장의 통과 방망이가 탁 탁 탁이날 16시 본회의가 열렸다. 20명의 유족이 지친 몸으로 본회의장 방청을 했다.

사회는 경기 포천 출신 이한동 부의장이 보고, 제안 설명은 합천의 권해옥 의원이 하였는데, 표결에 들어가 이한동 부의장이 이의 없느냐는 물음에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아, 통과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탁 탁 탁아홉 번의 방망이 소리가 끝났다. 유족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늘을 위하여 장장 4410여 개월 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나? 그런데 거창사건이란 뚱딴지같은 혹이 하나 붙었다. 이강두 의원은 위령 사업비 10억을 제안했단다.

 

고유제(孤遺祭)

居昌事件 犧牲者靈位19951228일 신원면 과정리 복지회관 2층에서 유족과 면민이 가득 모인 가운데 특별법이 제정되었음을 알리는 고유제를 지냈다. 초헌 문병현 회장, 아헌 이철수, 종헌 홍상근, 사회는 조성제가 보았다. 고유제를 끝내고 경과보고를 하는 내 마음은 특별법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이강두 의원은 추모사에서 특별법 제정에 생색을 냈으며, 정주환 군수, 이일우 전 면장의 고유사에 이어 차석규 씨의 시낭송으로 행사는 끝났다.

한 달 10일 전 특별법 제정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 임시총회를 할 때는 40여 명이 모여 썰렁했는데, 오늘은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온기가 돌았다. 짧은 시간에 준비하느라고 지방에 자를 () 자로 표기해놓고 진행방법도 서툴러 무안했으나, 복지회관 마당에 유족 부인들이 솥을 걸고 국을 끓여 밥과 함께 내놓은 막걸리는 기운을 솟구치게 하였다. 경과보고 내용은 지금까지 법 제정을 위하여 동분서주한 노력들을 이야기하였다.

 

경과보고(고유제)

거창사건 등과 관련하여 사망한자와 그 유족에게 가해진 불명예에 대하여 명예회복을 시켜준다는 목적의 제8조로 된 알맹이도 없는 법을 제정하는데 44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유족들은 괴 단체들로부터 방해를 받아가며, 관계 여로에 수많은 진정과 호소로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진 특별법 제정 과정이 너무나 눈물겨웠습니다. 1989918일 고 김동영 의원이 국회의원 165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거창양민학살사건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처음으로 국회 내무위에 발의되어 법사위로 올라와 전문위원 심사보고와 김동영 의원 제안 설명까지 끝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3당 합당과 김 의원 돌연사(突然死)13대 국회 회기 말에 자동폐기되었다. 그 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지역에는 이강두 의원이 탄생하였습니다. 199311월 김종필 당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거창사건 민원을 보고하여, 대통령은 반대하지 않으니 야당과 합의하여 해결하라는 승낙을 받아 민자당 당무회의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 법안에는 명예회복과 위로금 지급이란 문안이 있었는데,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양민학살배상자를 넣어달라고 하였는데, 넣기는커녕 축소 변질시켜, 2년여나 이강두 의원님과 우리 유족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14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겨우 논의를 하면서, ˙보상은 안된다 하여 이강두 의원이 거창사건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안보상이란 말을 빼버렸습니다.

19951130일 국회 내무 상위에서 소위로 넘어가, 1213일 소위에서 상위로 올라와, 오후 3시에 다시 속개되어 5번째 안건으로 이강두 의원의 제안 설명까지 끝냈습니다. 김용태 내무부장관은 처음부터 전국 유사 사건을 들먹이며 반대를 하였고, 김기배 위원장이 의원들의 의견을 묻는데 합천 권해옥 의원 송탄 평택 김영광 의원 자민련 원내 총무 한영수 의원과 이수담 의원이 전국의 유사 사건과 산청 함양 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소위로 넘겨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자 하여 또다시 소위로 넘겨졌습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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