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님과 함께 하는 치유와 성장 이야기]그녀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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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님과 함께 하는 치유와 성장 이야기]그녀의 숙제
  • 한들신문
  • 승인 2020.08.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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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주(첫):교육학 박사

조윤주(첫) 선생님은 교육학 박사(상담심리전공)·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상담전문가입니다. 치유와 성장 공간 더 어스(THE EARTH)에서 치유작업과 상담 활동, ᄒᆞᆫ철학을 바탕으로 한 ᄒᆞᆫ상담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쇼크는 여기저기에 많은 성찰과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지난 4, 아직 찬바람이 남아있을 때였고 경남에서도 간간히 확진자 소식을 들을 때였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교사들은 재택근무라는 생전 있어보지도 않은 형태의 근무를 했다. 그 상황에서 모두가 초예민해져서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녀는 학교 관리자와 갈등을 경험했고, 내게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했다. 긴급하게 재택근무를 명령한 날, 텅 빈 학교를 실무원님이나 활동 보조사님들이 지키게 된 것을 보았다. 그 일은 그녀의 의협심에 불을 붙였고,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서로 거칠게 소통이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실타래처럼 복잡한 그녀의 심경을 공감과 질문으로 풀어나갔다. 긴 통화 끝에 정리한 바는 이런 것이었다. 관리자의 리더십에게 거는 기대가 아무리 합리적인 내용이어도, 관계와 관계로서 만날 때는 그런 기대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 기대라는 것은 그 뿌리가 내가 만든 것이지 상대방의 동의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에 남는 분노와 실망감은 지속적으로 남아 일차적으로 나를 괴롭히고 이차적으로 관계를 훼손한다.

그다음 날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관리자 선생님과 편하게 속을 터놓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현명하고 속 깊은 그녀의 선택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숙제를 한 가지 냈다. 그 분노와 실망의 뿌리를 찾아보라고.

8, 그녀는 나와 차를 마시자고 하였다. 드디어 그 숙제를 마쳤다고. 어른에 대한, 리더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뿌리는 자신을 거슬러,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다시 어머니의 시어머니(친할머니)로 이어져있었다.

엄마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거의 고아로 자란 분이었다. 엄마는 때때로 아빠에게 맞았고 그녀는 그것을 보면서 자랐다. 엄마의 시어머니는 매정하고 쌀쌀했다. 그 시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고 일본어로 된 책을 홀로 읽으며 교양 있었던 시어머니는 양수가 터져 갑작스럽게 출산을 하게 된 며느리에게 산국도 끓여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녀를 낳고 너무 배가 고파 손수 미역을 꺼내 산국을 끊였다.

그녀가 예닐곱 살 때 엄마는 시장에서 속옷 가게를 열었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래야 주변에서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무남독녀인 그녀가 집안 손님에게 용돈이라도 받으면 십 원짜리까지 다 뺏어갔다. 그녀는 그런 엄마가 밉고 화가 났다. “엄마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사회적 약자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은 그들의 입장을 엄마와 같은 것으로 보아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동일시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나와 엄마 사이에 있던 동일시도 떨어져 나갔다.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었어요. 무섭고 정말 미워했어요.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에게 맞아본 적도 없고 욕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아빠를 그렇게 무서워하고 미워했네요.”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동일시의 발견이 지금 당장 해탈에 가까운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예전처럼 휘둘리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자 또 다른 기억들이 새로운 전경으로 등장한다.

엄마가 지금 보다 조금 더 젊었던 어느 날, 할머니의 노골적인 무시와 하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기를 들었다. “다음부터는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 방문을 넘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말년에 요양병원에서 투병을 하시면서 가족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 나한테 좀 잘하시지. 그때 나한테 좀 잘하시지. 그랬다면 지금 내 집에서 편안히 계실 건데하며 안타까워하셨단다.

여기까지 듣고, 내가 어머니는 사랑이 참 많은 분인가 봐요.” 했다. 그녀는 눈이 동그래졌다. 순간 목울대가 울컥하는 것이 보인다. 자기는 한 번도 엄마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곧 오래된 새로운 기억들이 연결되어 올라왔다. 옛날에 그 시절에 옥수수를 삶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엄마가 살아났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사주셨고, 그 후로 무남독녀인 딸이 하고 싶다고 하면 다 들어주셨던 엄마가 살아났다. 또 얼마 전에는 그녀가 다리를 다쳐 병가를 내는 동안, 엄마가 집에 오셔서 살림을 살아주셨다. 그녀를 마치 신생아 다루듯 먹이고 입히고 하며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대단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셨단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인식 못했는데, “아하! 우리 엄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어머니가 사랑을 못 받아서 사랑을 못하는 분이 아니었네요. 사랑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어머니 내면에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네요.” “, 선생님.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그렇게 예뻐하셨대요. 시집가서 할아버지에게 칭찬도 많이 받고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면 우리 며느리라고 그렇게 자랑도 하셨대요.”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이 없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이 많고 사랑을 받아본 분이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반짝했다. 우리는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숙제를 했고, 그리고 숙제를 마쳤다. 그녀와 나 사이에 차 한 잔을 두고 업장소멸의 시간은 그렇게 깊고 차분하고 따뜻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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