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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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 한들신문
  • 승인 2020.08.31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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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염민기, 시인

거창 사과를 받고

 

 정일근

 

농약 치지 않고 농사지었다는 거창 사과를 받고

나무마다 몇 알 달리지 않는다는 거창 사과를 받고

죄 없는 사과나무에 죄 많은 농약 치고

죄 없는 사과 껍질 두껍게 깎아내며

그 독한 죄 모두 사과에게 뒤집어씌우며

사과나무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살았는데

껍질째 먹으라는 거창 사과를 받고

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한입 성큼 베어 먹기 미안한 날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사


날마다 밭에 일하러 나가 보면/ 빨간 사과가 탐스럽고 보기가 좋다/ 사과를 보면 농사를 지으며 힘들었던 것들도 잊게 된다/ 다음에는 더 달고 맛있는 사과 농사를/ 지으려 노력해야 겠다

-<사과 농사, 전문> 거창군 웅양면 왕암리, 김윤순 할머니 지음

소풍 같은 백일장- 할매 할배 학교 갑시다 작품집, 2013

 

붉은 사과를 받고 성큼 한입 베어 먹기 미안해하는 시인이나 힘든 것도 잊고 더 달고 맛있는 사과 농사를 지으려는 농부나, 그 마음에 찡한 사과향이 난다.

 

시인도 짓고, 농부도 짓는다. 짓는다는 것은 시인과 농부의 공용어이다. 정성이며 노력이 고스란히 스며있다는 뜻도 된다.

탐스러운 사과를 짓는데 온갖 정성과 노력이 배어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먹기에 미안해하고, 농부는 누군가가 먹을 더 달고 맛있는 사과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각박한 세상살이가 한결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이런 마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카페 댓글에 있는 말이다.

거창 사과는 곡 옷소매에 닦아 먹어야 제맛이랍니다.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함께 먹으면 더더욱 맛있다는 농업기술센터의 연구결과~^^*’

 

정일근 시인이 받은 사과가 거창군 웅양면 사과이다. , 거창 사과를 받는 날, 댓글처럼 소매에 쓱쓱, 혼자가 아닌 좋은 사람과 함께 먹으며 시인의, 농부의 은은하고 새콤달콤한 마음을 한껏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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