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내가 원래부터 교사였나?’
상태바
[교단일기]‘내가 원래부터 교사였나?’
  • 한들신문
  • 승인 2020.09.18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샛별중 교사 전하늬

영수가 학교를 안 왔다. 괘씸하다.

정말 화가 난다. 학생이지만 진짜 너무한다. 하루 종일 전화를 안 받는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계속 거는데 받지를 않는다.

집에 애들한테도 집중이 안 되고 영수 이 녀석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진짜 괘씸하고 미워지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이 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영수의 잘못이 뭐지? (20156월 일기)”

내가 원래부터 교사였나?’

몇 년 전 옆에 계신 동료 선생님이 학생이 이해되지 않거나 학생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오면 이 질문을 던져 보라시길래 포스트잇에 적어 교무실 내 컴퓨터에 붙여놓았다. 우리 집 내 화장대 앞에도 내가 원래부터 엄마였는지 묻는 질문이 붙어져 있다. 이 메모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 내가 교사가 되기 훨씬 이전엔 학생이었구나. 내가 엄마가 아닌 어린 딸이었을 때도 있었지.

 

사춘기 시절에 나는 선생님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늘 평가하곤 했었다. 선생님들의 약점이 내 레이다망에 걸린다. , 한 선생님이 내 친구를 굉장히 무시하는 말투로 화를 내셨다. 그 순간 이 선생님은 선생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내가 세운 기준에 의하면 선생님은 친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선생님은 너무 못 가르치신다고 벌써 실력이 없는 교사라고 결론 지어 버린다. 교사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발동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교사의 자격을 갖춘 분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부끄럽지만 그때 내가 세워놓은 좋은선생님의 기준으로 치면 나는 여기 있어서도 교사가 내 직업이어도 안된다. 이 글을 만약 나의 선생님들이 읽고 계시다면 참 죄송했다고 지금이라도 사과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선생님들께만 그랬을까? 내 부모한테는 더 까다로웠다.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치 1번 문제 빙고’, 2번 문제 과 같은 식으로 시험문제를 채점하듯 점수를 매긴 것 같다. 형제가 많았기에 조금만 불공평하게 대해도 감점, 나한테 화를 내도 감점,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도 감점, 내가 사 달라고 하는 것을 안 사줘도 감점이었다. 현재 엄마로서의 나 또한 이 채점기준에 의하면 완전 빵점짜리 엄마다. 우리 엄마가 만약에 좋은 엄마로서의 성적을 목표로 두셨더라면 아마 큰일 났을 거다. 채점기준이 내 느낌과 감정에 의해 매일같이 달랐기 때문에 자존감이 아마 엄청나게 낮아졌을 테니까 말이다.

 

참 신기하다. 내 앞에 있는 메모지 속 내가 원래부터 교사였나?’는 질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금 전 나를 무지 화나게 만들었던 상황에서 잠시 나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내가 어떤 당위적인 생각들로 상대를 구속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도 썩 어른들이 만족할만한 학생도 자녀도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관계를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상대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만 할 뿐 전혀 행복을 주지 못하는 말들이 오고 갈 뻔하다 그전에 멈춘 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메모지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고자 지혜를 구해본다.

 

덴마크에서 돌아오자마자 3일간 영어 캠프를 했다. 여행 가기 전에 학생들과 약속했던 거라 피곤했지만 지켰다! 함께 식사하며 한 명씩 서로에게 강점들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너무 갑자기라 놀랐지만 기다렸다. 그리고 물었다. 어떤 마음에서 눈물이 쏟아졌느냐고.

늘 칭찬보다는 비교하는 말을 들어 내가 못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내가 소중하다는 말을 들으니까 울컥하고 올라왔어요.”

! 너도 그랬구나! 사실, 우리가 다 그렇다. (20191월 일기)

 

나는 솔직히 좋은 엄마도 좋은 선생님도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조금씩 모자란 나와 당신이 존재함 그대로 진심으로 만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로 인하여 아이들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존재 자체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길 꿈꾼다. 나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이라는 함정에 자칫 잘못 걸려들어 우리가 너무 많은 기준을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 어떤 사람도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나도 당신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감정을 만나며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숱한 경험 속에서 허덕이며 문제를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만난 그 순간에 서로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며 대화하게 될 때 우리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 되지 않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들의 사춘기에 부모들이 잠깐 멈추어 서서 마음으로 그들에게 귀 기울여 주기를, 그들의 느낌에 집중해 주고 그들의 욕구에 공감해 주기를, 그래서 가정은 가족들이 쉴 수 있고, 행복을 느끼고, 재충전하는 장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18. 이윤정저, 한겨레 에듀(2010)

(2020630)

 

추천도서

1.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 이윤정 저, 한겨레 에듀(2010)

2.부모와 아이 사이하임G.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양철북 (2003)

3.삶을 위한 수업』 인터뷰· 글 마르쿠스 베르센기획·편역 오연호, 오마이북(2020)

4.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이은정 옮김한문화(200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