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서른 번째]할머니는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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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이야기 서른 번째]할머니는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 1편
  • 한들신문
  • 승인 2020.09.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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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성윤 씨(가명)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 구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시설에서 그저 편안하게 지내기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서툴러서 혼날까, 실수해서 피해 입힐까, 남에게 손가락질당할까 봐 그랬다고 할머니가 나중에 말했습니다.

첫 직장은 고등학교 내내 다니던 단골 미용실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성윤 씨 사정을 듣고 채용했습니다. 17개월, 미용실 문 열기 전에 미용실 직원들과 청소했습니다.

할머니는 미용실에 찾아가 손자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고, 손자가 하는 일을 듣고 보았습니다. 사장이 있고 동료가 있는, 시내 한가운데 번듯한 가게에서 손자가 일했습니다. 그때, 당신 손자도 뉘 집 손자처럼 일할 수 있다는 걸 봤습니다. 미용실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하니, 시설에서 그저 편안하게 지내기 바란다던 할머니가 어디 다른 데 알아봐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습니다.

일 년 뒤, 레스토랑에 취업했습니다. 직장에 여름휴가 신청하고 할머니와 여행 가고 싶다 했더니, 할머니가 크게 웃었습니다.

여행을 보름 앞두고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윤이 왔나?”

할머니는 마당에서 손자를 맞았습니다. 성윤 씨는 종종 할머니 댁에 다녀옵니다. 하룻밤 자고 올 때도 있고요. 할머니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많이 사 오라 하셨지만 정작 손자가 오니 할머니 손이 더 분주합니다. 대청마루에 앉는 할머니를 기다렸다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손자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이게 우리 윤이가? 기계를 돌리는가, 팔을 막 돌리고 그라네.”

일하는 가게는 어디고, 어떤 일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지, 할머니는 영상을 보며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할머니 댁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밥상을 차렸습니다. 성윤 씨가 준비한 삼겹살과 할머니 텃밭의 채소로 풍성했습니다. 벽돌 위에 넓적한 돌을 얹고, 그 아래 장작을 피워 돌을 달궜습니다. 할머니는 프라이팬 대신 돌판을 냈습니다.

저녁 먹고 할머니 댁 안방에서 성윤 씨의 여름휴가, 할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을 의논했습니다. ‘할머니 여행 부산 해운대’, 성윤 씨가 적은 메모를 보였습니다. 손자가 글을 잘 읽고 쓴다고 칭찬하면서도 가겠다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도울 대학생이 있고, 시설 직원도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손자는 손자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성윤 씨, 할머니와 여행 가고 싶어요?”

할머니, 여행, 부산.”

성윤이 덕에 이 할미 부산 가겠네.”

할머니는 성윤이 덕이라고 했습니다. 손자를 대견해했습니다. 시설에 갔다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잊히는 존재, 꺼내지도 끄지도 못한 채 가슴 한구석 불덩이로 남은 존재, 그런 존재로 여기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여행까지 보름, 준비할 게 많습니다. 무엇이든 성윤 씨를 앞세워서, 성윤 씨의 강점을 살려서, ‘우리 윤이 덕에 할미가 부산 가겠네.’ 했던 할머니의 말씀을 이루고 싶습니다. 성윤 씨는 자기 생각을 말할 때 단어를 나열합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데 단어로만 나열합니다. 컴퓨터를 잘 다룹니다. 주로 게임하고 야구 동영상을 봅니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과격하지 않고 섬세하며, 누구는 소심하다 했지만, 잘 웃습니다.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여러 권 봤습니다. 글을 아는 강점을 자기 여행의 실제에 활용했습니다. 종종 들르는 PC방에서 해운대 사진, 숙박 정보, 교통편, 부산 여행 코스를 살피고, 부산시청 홈페이지에 성윤 씨 이름으로 관광 안내 책자를 신청했습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강점을 자기 여행의 실제에 활용했습니다.

휴가 때 입을 옷을 샀습니다. 선글라스도 샀습니다. 단골 옷 가게 사장님이 코디를 자청하여 여러 벌을 갈아입혔습니다. 사장님의 추천을 거두고 성윤 씨는 자기 스타일을 골랐습니다.

중간중간 할머니에게 상황을 알렸습니다. 성윤 씨와 할머니가 준비하는 여행, 성윤 씨와 할머니의 여행이게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부산, 여행.”

그래, 부산!”

성윤 씨의 짧은 보고에 할머니가 응원을 보탰습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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