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와 정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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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정치꾼
  • 한들신문
  • 승인 2020.09.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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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거창지회 초대 지회장 윤진구

그는 197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전설이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유시민, 심재철, 심상정 씨도 그를 하늘처럼 흠모하며 따랐다. 노동운동가.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 설립 주도, 1986년 인천 5·3 민주화 운동 주도, 1990년대 제도 정치권 민중당창당(이재오, 이우재, 장기표 등과 함께), 14대 총선(1992) 낙선, 1년간 택시 운전을 할 때만 해도 그의 신념과 원칙은 독재 권력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그가 남긴 신념과 원칙의 말과 행동은 양심과 소신이 죄가 되어 형벌로 다스려진 아이러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리라고 낙관했다.

그러던 중 어느 때 느닷없이 그는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한다. 변절? 아니 전향이다. 명분은 독일 통일, 소련 해체, 냉전 종결 등 역사적 변화와 현실정치의 한계를 내세웠다. 이때부터 그는 쉼 없는 우향우 자세를 취하며 마침내 아스팔트 우파가 된다. 그는 승승장구한다. 15, 16, 173선 국회의원. 32, 33대 재선 경기지사, 대권 잠룡의 화려한(?) 이력을 쌓는다.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지난날의 소신과 철학은 빛바랜 쓰레기가 되었다. 그는 누구일까?

 

정치인을 국가의 권력 장치의 운전에 참여하는 직업인으로 정의한다면 정치인처럼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기차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책임이 바로 그 차에 탄 승객들의 운명과 직결되듯이 국가의 권력 장치의 운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 정상배(政商輩)라는 말이 있다. 정치가와 결탁하거나 정권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애국’, ‘애민이라는 위조상표를 온 몸뚱이에 덕지덕지 붙이고 돌아다니면서 자리를 탐하거나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이 선거 때는 우글댄다. 하루아침에 실력자의 품에 안겨 지금까지의 정치적 소신을 가당치도 않은 논리를 빗대며 돌아선다. 입으로는 정의를 내세우고 민주를 선전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불의를 행하고 반민주를 행하는 자들이다.

 

정상배들은 이념보다는 이해에 따라 행동한다. 이념으로 분장하다가도 이해가 얽히면 미련 없이 이해 쪽을 택한다. 흔히 회자되는 말에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는 서양의 격언은 정상배의 정의를 비교적 쉽게 해주고 있다. 정상배들은 다음 세대는커녕 현실 문제조차도 외면하고 다음 선거로 상징되는 이해 문제에만 전심전력한다.

원칙보다는 시세에 영합하고 의()보다는 이()에 더 민감한, 오직 다음 선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불행히도 우리는 다스림을 받아왔다. 타협의 원칙보다 원칙의 타협을 일삼는 자들, 제 집단이나 국가 운명보다는 자신의 영달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자들이 지역주의라는 양지의 달콤함에 취해있는 꼴은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중앙정치는 물론이고 지역 정치조차 못된 것을 배워 나부대는 꼴이 가관이다. 바른 길, 정도라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허리를 굽히고 몸을 바꾼다고 욕할 게 없다. 문제는 그 길이 이념이나 명분’ ‘신념을 향한 것이냐, 이해 때문이냐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상배들은 이해 때문에 몸을 다쳤다. 몸을 판 정상배들이 그 자신의 일생은 안일하고 기름지게 살았는지는 몰라도 추한 이름을 후세에 남긴 것만은 어찌할 수 없는 업보이다.

더 나은 자리만 보장된다면 소신이고 뭐도 없다. 지조와 신념을 팔아 정상배적 행위를 일삼는 자들은 어떤 계기가 오면 반역의 앞장에 설 무리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변절자는 변혁기에 많이 나타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정치권력이 바뀔 때면 의례히 변절자들이 생긴다. 기회를 엿보다가 세()가 유리하다 싶은 쪽으로 재빨리 붙는다. 신념, 의리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직 이해만이 변신의 목적이다. 변절자들에게는 공명심은 있어도 도덕적인 윤리의식을 찾기는 어렵다.

 

17세기 스웨덴 정치가 옥센셰르나 백작은 죽으면서 이렇게 유언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두거라.”

-바바라 터크먼

<독선과 아집의 역사>에서-

 

권력의 핵심에서 평생을 보낸 노정치가의 뼈아픈 정치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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