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단하다, 부럽다는 말과 함께 생각만 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여러 번 듣다 보니 내게 여행을 선택하기까지 무엇이 어려웠나 자문하게 됩니다.
세계여행을 가자 생각하고 가기로 결정한 날은 하루 차이, 24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면 되고, 하던 일 잘 마무리해서 정리하면 되고, 준비과정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고, 실제로도 순조로웠습니다. 오히려 응원 칭찬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응원금과 선물 식사초대 많이 받았지요.
다만 한 가지 어려운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제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 재미있게 일하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정겹게 지내던 어느 날, 나를 찾아온 ‘세계여행’이라는 생각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일이 맞긴 한 걸까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이런 의문 속에 있어 왔고 비행기 티켓 살 때까지도 속 시원한 대답도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 의문을 친구 삼아 가보자
분명 뭐가 있어서 그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된 걸거야 라는 용기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게 찾아온 생각, 그것에 대해 긍정하고 믿어보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지금도 저는 의문 속에 있습니다. 거창에 돌아가면 헤어 나올 수 있을까도 의문입니다.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거일까봐
지금 내가 할 일이 이게 아닐까봐
이 여행의 의미를 못 찾게 될까봐 두렵고 불안한 날도 있습니다.
허나 아직 여행 중입니다. 빠샤!! 2015.4.24 세상의 중심선, 에콰도르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돌아다니고 남미의 끝에서 여행 일 년을 맞았습니다. 꽤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대체로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때로 이게 무슨 한량 짓인가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일 년만 다녀온다고 했지만 떠날 때부터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없었고 내심 일 년 보다 더 오래 여행할 것 같았는데 역시나 이로부터 육 개월 더 놀았습니다.
여행 일 년 즈음에 쓴 글인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이 없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대답 못하는 제가 스스로 불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답 못하면 어때, 마땅한 대답 없어도 괜찮잖아’ 하며 긴장을 툭 풀어놓는 저를 봅니다.
그때 불안과 의문에 대답하지 못해 쭈뼛거리는 제 등을 떠밀어 준, 지금까지도 잘한 일이라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해주는 둘레 사람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십팔 개월 여행했으니 여행 이야기도 삼분의 이가 지나갑니다. 올해 말 즈음에는 마무리가 되겠지요. 읽어 주시는 한들 신문 구독자 여러분 덕분에 여행을 자주 되새기며 추억을 누립니다. 고맙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20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