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우리에겐 내년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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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우리에겐 내년이 있잖아?!”
  • 한들신문
  • 승인 2020.09.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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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고재천
귀농인 고재천

한 해 농사가 이제 마무리되어간다. 올해는 고난과 고뇌로 이루어진 한 해였고, 역시나 결과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긴 장마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 때문이다. 올초 농사를 시작할 때 조금 더 나은 농산물을 생산하려고 나름 욕심을 내고 투자를 했었다. 너무 더울 것을 대비하여 점적관수를 설치하였고, 요즘 농사 트렌드는 밭에 액체 비료를 뿌려 생산량과 과실의 품질을 올린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펌프를 사서 관주 설치도 하고, 액비도 많이 사놓았다. 또 수확 시 작업의 용이성을 위해 저온 저장고도 설치하였다. 당연히 올해는 작년 대비 더 많은 매출을 올릴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고, 또 그래야만 했었다.

그런데 비가 끊임없이 오기 시작했다. 밭에 물을 줄 필요가 없었고, 액비를 뿌릴 수도 없었다. 일조량이 부족하니 과일은 안 익고, 저온저장고도 가동할 일이 없었다. 그냥 한 해 농사가 다 헛수고였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예전에 유기농업에 대해 공부할 때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농사는 우주적이고, 정신적인 힘이 작용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 무슨 괴상망측한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해와 달과 별의 기운들이 농사를 짓고,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은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왜 이리도 우주적이고 정신적인 힘이 농사도 짓지 못할 정도로 변하는가? 그건 아마 인간이 만든 급격한 산업화 문명으로 인한 환경파괴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낙담 와중에 같은 포도 농사를 지으시는 분께 폐원 일보 직전이라고 하소연 같은 농담을 하니 우리 농업인에게는 내년이라는 단어가 있잖아!”라고 웃으며 가버리신다. 오랜 농사 경험을 가지신 분이 보시기엔 농사지으면서 당연히 몇 번 겪는 그런 경험과 넋두리라 생각하신 것 같다. 어차피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내년에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된다는 말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도 웃프지만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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