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68)「아빠, 나한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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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68)「아빠, 나한테 물어봐」
  • 한들신문
  • 승인 2020.09.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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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임혜윤
버나드 와버 글 이수지 그림/옮김 비룡소 2015.10
버나드 와버 글 / 이수지 그림/옮김 / 비룡소 / 2015.10

 

아이와  물들인 가을 엽서, 가을 산책

하얗게 부추 꽃이 피었습니다.

봄부터 시작해 수없이 자라고 베이기를 반복하더니 이제 가을이 왔다고 하늘이 높아질 거라고 바람에 이리저리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코스모스도 언제 피었는지 예쁜 색깔과 고운 자태로 길가는 이의 핸드폰 갤러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추석도 있어 이산 저산에 벌초하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코로나가 아니면 가을 산행, 가을 소풍 행사로 바쁠 철인데 올해 가을은 산에 오르기도 쉽지 않고 단풍이 물드는 것도 보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아쉬움이 많은 가을날 예쁘게 물든 그림책 한 권 소개해 보려 합니다.

미국의 그림책 작가 버나드 와버의 마지막 작품을 읽고 매료되어 <파도야 놀자>로 유명한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번역을 함께 한 아빠, 나한테 물어봐 라는 책입니다. 원작 제목은 <Ask me>라고 되어 있는데 이수지 작가의 제목이 더 우리 정서에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연필로 가볍게 스케치하듯 그렸고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밝은 색깔들과 아빠와 딸의 가벼운 산책길이 주 배경인 책입니다. 책의 구조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은 아이가 있는 모든 어른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입니다. 책 표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면지와 뒤표지까지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가득 채운 공간 연출력이 뛰어납니다. 이 책은 이수지 작가의 열정과 아이들을 바라는 보는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은 어느 휴일에 아빠는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산책을 나서나 봅니다. 원피스에 빨간 카디건을 입은 단발머리 꼬마 아가씨와 갈색 바지에 파랑 야구 모자를 쓴 부녀의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입니다. 아빠는 아직 신발을 신는 중인데 아이는 신이 나서 계단을 뛰어 내려갑니다. 아빠도 피곤해 보이거나 귀찮은 내색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휘파람까지 불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읽는 독자들을 편안하게 합니다. 아이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도착한 공원에는 한가로이 누워서 책을 보는 사람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단풍 구경 나온 이웃집 아줌마도 보입니다. ‘아름다운 몸매를 원하세요. 하나, !’ 운동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마라톤 팀도 쌩하니 지나갑니다. 호숫가에 앉아 애완동물과 여유를 즐기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소소한 일상 모습입니다.

아이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아빠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넌 뭘 좋아하니?”

 

이렇게 시작한 대화들이 주위에 풍경들과 어우러져 소리가 아니라 배경이 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개, 고양이, 거북이, 기러기, 개구리, 나비, 꿀벌, 꽃등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붉은빛으로 물든 공원을 지나니 회전목마와 아이스크림 차가 보입니다. 아이는 다시 아빠를 보며 또 물어봐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빠는 뭘 좋아하는지 묻고 아이는 대답합니다.

 

나는 비가 좋아.

비가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내리는게 좋아.

난 이 말이 좋아. 빗소리를 내가 만들었어. 내가 만든 거야.”

주인공 소녀의 말은 마치 음악 선율과 같은 의성어를 쏟아 냅니다. 아이의 기발하고 엉뚱함이 통통 튀는 의성어와 섞여서 웃음소리마저 들리듯 한 표현입니다.

아이는 다시금 아빠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 내가 아이스크림 좋아하는지 한번 물어봐.”

 

아이스크림을 손에 넣은 아이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달콤하고 행복한 표정입니다. 언제 샀는지 빨간 풍선도 손에 들었습니다. 작은 숲에 가는 동안 딸아이는 계속 물어봐 달라하고 아빠도 아이가 원하는 질문을 하며 신이 났습니다. 아빠는 핸드폰을 보거나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아이에 말대로 묻고 대답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숲 속에서 둘은 신발도 벗어던지고 단풍 돗자리를 깔고 단풍 담요를 덮고 가을을 흠뻑 즐기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부럽기까지 합니다. 한바탕 가을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끊임없이 물어봐 달라고 합니다.

 

나는 다음 주 목요일이 좋아

다음 주 목요일이 왜 좋을까?”

왜냐면 ... 다음 주 목요일이...”

뭐더라?”

내 생일이잖아, 아빠!”

절대 잊으면 않돼!”

알지! 백만년, 천만년이 지나도 안 잊을게.”

 

아빠는 아이가 해달라는 질문을 할 뿐 어떤 교훈도 훈계도 결론도 내려주지 않습니다. 오가는 대화 속에 아빠와 아이의 교감이 느껴지고 그 시간을 즐기는 따사롭고 다정한 부녀의 모습이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이수지 작가는 본인의 남편과 딸아이의 모습을 책 속에 그대로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색하거나 불편한 장면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는 어떤 부모였는가 생각해 봅니다.

아이의 너무 많은 질문과 특히 엉뚱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발상이 부담스럽고 일일이 대답하기가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 주인공 아빠가 딸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을 다해 대답해 주는 모습을 보니 반성을 하게 됩니다.

 

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던가!”

-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중에서

 

아이에게 많은 시간 학업, 성적, 입시, 대학 등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힘들게 했던 시간이 많이 미안해집니다. 서툰 부모를 이해하고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담아 가을 엽서 한 장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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