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퍼 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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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퍼 주는 마음
  • 한들신문
  • 승인 2020.10.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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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블로 젤라또 전효민
2015. 05 콜롬비아 엘뻬뇰
2015. 05 콜롬비아 엘뻬뇰

 

베를린에서 산 고추장 한 통,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밥 해 먹으며 다 비우고 나눌 때 생각할 것들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쏙 들어가고 빈 고추장통에서 고마운 분들 얼굴 떠올리며 훈훈한 마음에 미소 지으며 마음 든든했던 일입니다.

장기 여행 필수품인 고추장은?

몇 달 후 바다 건너 아르헨티나 한인마트에서 보충했습니다. 그로부터 삼 개월, 남아메리카 칠 개국을 풍성히 누비고 중앙아메리카 파나마를 거쳐 선선한 날씨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코스타리카입니다.

일요일이라 오랜만에 너른 잔디밭에 우뚝 선 한인교회를 찾았습니다. 마침 어버이주일로 아이들이 어른들 가슴에 카네이션 달아드리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교회 학생부 추억과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훈훈하고 은혜로웠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님께서 고향이 거창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대고 13) 사촌형님이 거창에 사신다는 교회 장로님께서 점심식사 살뜰히 챙겨주셨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여 집사님께 고추장 살만한 마트가 있는지 여쭈니 마침 오늘 메뉴가 회덮밥이라 고추장이 있다며 통에 담아 주셨습니다. 보태어 저녁에 먹을 김치와 회덮밥도 싸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두 손이 묵직했습니다. 두 손보다 마음이 고마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신 고추장을 그간 고추장찌개며 비빔밥, 비빔라면으로 바닥을 보이던 우리 고추장 통에 옮겨 담았습니다.

저절로 채워지는 고추장 통에서 빈 고추장통을 바라보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값없는 사랑을 여전히 풍성히 누리는구나, 나름대로 나누지만 여전히 내가 얻고 누리는 게 훨씬 더 많구나.

옮겨 담아 묵직한 고추장 통을 손에 쥐니 가진 것을 거저 내주는 그 마음에 훈훈합니다. 받아 누린 것을 생각하니 나눈다 자랑할 순 없는 노릇이겠습니다.

마땅한 일, 다함이 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5.05.10. 코스타리카


백일이 채 안된 서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점심 외식을 했습니다. 마주 앉아 밥을 먹지만 한 손 밖에 쓸 수 없습니다. 서진이를 안고 먹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울지 않으니 고맙게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분이 아기 어릴 때는 먹는 게 힘들다며 내가 좀 안아주겠다 하셨습니다.

아기 예쁘다고 덕담까지 해주시며 안아주셔서 두 손으로 야무지게 밥을 먹었습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좀 안아줄 테니 잠시라도 편하게 마시라는 분의 품에서 서진이는 잠들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추장을 퍼 주고, 아이를 안아줍니다. 그 마음이 저희로 혹은 젊은이로 하여금 세상과 사람에게 감사하게 합니다. 나도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게 합니다.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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