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비보다. 마을 물을 같이 먹고살던 남자 사람 한 분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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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비보다. 마을 물을 같이 먹고살던 남자 사람 한 분이 돌아가셨다
  • 한들신문
  • 승인 2020.10.1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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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그날은 남편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산책 다녀오던 길이었다. 산 이름은 모르고 그저 큰 골이라 들었다. 수고 없이 얻어걸린 기가 막힌 풍광을 뿌듯하게 즐기고 내려오는데 119구급차가 점멸등을 켜고 비탈길에 서 있었다. 그 댁인데! 노령의 어머님과 아들인 꽁지머리 아저씨가 사는 집이었다. 항상 취기가 있던 분. 마주치면 혹시라도 주사(酒邪)를 하지 않을까 살짝 긴장하게 되던. 한 번은 집에 오셨는데 여느 때보다 더 술에 취해 있어서 들어오시라 못했던. 술이 깨면 오시라 그러면 얼마든지 이야기 들어드리겠다고 울 남편이 약속했던, 그 남자 사람이었다. 119 이동 침대에 누워 미동도 없는 아저씨의 두 발이 보였다. 검정 양말을 신고 있었다.

다음날 확인했더니 운명하셨다 했다. 빈소인 거창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자제분들이 계셨다. 마을 청년 두 분이 오셨다는데 만나 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들은 비보, 노모가 뒤미처 돌아가셨다 했다. ‘아아좀 찾아뵐 것을.’ 90도로 굽은 허리만큼이나 수고로운 세월을 살다 가신 어른은 내게 애처로운 눈빛만을 남기고 가셨다. 기억해드릴 이야기가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이주해 오기 전 수십 년을 살아서 지켜 오셨던 분인데.

문득, 다시 생각이 났다. 10여 년 전부터 틈틈이 생각을 키워온 프로젝트다. “마을 인생 기록이다. 마을 생활 아카이브!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최소 정보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는 작업이다. 그 자리를 살아낸 수고를 남기는 일이다. 죽어 묻힌 자리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살고 살아낸 삶의 자취를 남기는 일이다. 마을 단위로.

사람은 미물이 아니다. 공룡의 발자국이, 선사시대 돌에 박힌 씨앗이, 얼음에 박힌 화석이 후대에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기여하지 않나. 하물며 지금을 사는 사람의 흔적이 후대에 기여하는 바가 있지 않겠나. 아니, 훗날 기여하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사람이 존중받는 일, 세상에 태어나 질곡의 인생을 살아낸 거룩한 수고는 남녀노소, 빈부, 귀천 구별 없이 기억되면 좋지 않겠나. 큰일을 한 사람. 큰 사고를 친 사람 그들은 공적을 남기거나 뉴스 기록이 남겨진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최소 인생 자취는 어디 가면 찾아볼 수 있나? 족보는 양반들의 혈통, 호적은 법적 가족관계, 주민등록은 대한민국 국민의 멤버십인 것처럼 마을 인생 기록 그냥 사람들이 살아진 이야기도 있으면 싶다.

큰 골을 산책할 때면 두 분이 사시던 집을 지난다. 꽁지머리 아저씨와 허리를 펴지 못하시던 노모의 인기척도 그분들의 세상살이도 전부가 사라졌지만, 기억되는 두 분의 모습이 애달프다. 그때 이야기라도 들어드릴 걸 하는 미안함은 스산한 늦가을 기운처럼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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