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학교 뒤뜰과 유치원 옆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가 떨어진다. 아침으로 아이들과 산책하면서 통통한 도토리를 몇 알 주웠다. 손으로 감싸고 돌돌 굴리다 보면 알이 반들거리는 게 이쁘다. 아이들도 날 따라 주웠다. 산책할 때마다 줍고 애들까지 보태니 제법 모였다. 묵을 만들어도 되겠다 싶네. 도토리묵을 만들어봐? 그런데 다들 묵 만드는 건 장난 아니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하자고 해야 하지. 내가 나서서 하면 이건 다 내 일이다. 애들은 뭐라고 할까?
“얘들아, 도토리묵 한 번 만들어볼까? 만든다면 너희들이 해야 해. 난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만 알려주고. 되겠나?”
학교 다니기 싫고 공부하기 싫다고만 하던 아이가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배움이 일어나지. 더구나 올해 6학년은 코로나 19로 수학여행도 못 간다. 학교 밖을 나가는 게 쉽지 않다. 주상초등학교 안에서 우리 추억을 하나라도 쌓자. 묵 만들기 좋네.
“좀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우리 묵 한 번 만들어보자.”
묵 만들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쉬는 시간마다 밖에서 도토리를 줍자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도토리 줍고 묵 만드는 이야기는 글로 쓸 참이다.
주상초등학교니까 마음먹을 수 있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작은 학교니까 가능한 일이다.
“선생님, 얼마만큼 더 주워야 해요?”
“나도 모른다. 너희들이나 나나 다 처음인데. 모자란 것보다야 좀 많은 게 낫지 않겠나? 조금만 더 줍자.”
“아! 모기!”
도토리를 줍는 날은 아이들이 모기 밥이다. 교실로 돌아와서는 서로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찾는다. 지혁이가 한 팔을 주욱 뻗어서 약을 바르고는 쓰러진다. 그래, 힘들었구나.
“모기가 여기 왜 있어!”
준수가 화를 내듯 말한다. 준수 다리에 또 모기가 붙었나 보다. 도토리 줍던 곳에 있던 모기가 교실까지 따라왔나? 준수는 비탈까지 내려가서 도토리를 주워왔다. 여기저기 많이 물렸다. 참 간지럽겠다. 이걸 다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일까?
공부하기 싫다던 아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글쓰기 싫다던 아이들이 글을 썼다. (2020. 9. 25. 금)
죽을 뻔
길종우(주상초 6학년)
지혁이가 죽을 뻔했다.
3교시에 도토리 줍기, 껍질 까기를 했다.
난 껍질 까기를 했다.
지혁이가 왔다.
“별로 못 주웠어.”
좀 아쉽다.
내가 “주우러 가자.”라고 했다.
갔다.
경사가 세다.
내가 마음속으로 ‘와우시, 잘못하면 다칠 것 같다.’
내가 먼저 내려갔다.
지혁이 발이 미끄러졌다.
내가 지혁이 손을 잡았다.
지혁이가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지혁이가 안 다쳐서 다행이다.
※ 아이 이름은 가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