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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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실종
  • 한들신문
  • 승인 2020.10.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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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거창지회 초대 지회장 윤진구

지방자치제도는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뿐 아니라 북한과 같은 공산 독재국가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란 지역민들이 직접 대표를 선출해 자발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예산도 집행하는 제도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모든 국토를 통치하기에는 지역별 특성이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따라서 국가운영에 지방자치는 필수 불가결한 제도이다.

우리도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지방자치제도 도입으로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주인이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실험은 주권의식을 고취시켰다.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부정선거를 획책할 수 없고, 지방이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주민을 위한 행정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지역행사가 명성을 얻으며 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방자치제도 도입의 결과였다. 주민의 투표로 임기가 보장된 일꾼이 어디를 보고 일하겠는가? 당연히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역을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많은 결함도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지방자치단체의 자치 영역도 턱없이 부족하고 지방재정이 취약한 상태에 있는 등 개선할 부분이 많다.

또한 낮은 투표율로 오로지 사업상 이권을 노려 진출하는 사람들, 지역주의 정치문화에 편승해 특정 정당의 공천만으로 당선을 노리는 정치꾼들이 득실대는 선거풍토 속에선 제아무리 제도가 좋은들 무엇하랴. 제도보다는 그 제도를 운용하는 인간의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믿음의 정치, 믿음의 행정은 제도의 장치만으로는 거두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새 제도를 마련하고 묵은 제도를 손질해도 부질없는 짓이다. 역시 정치와 행정을 이끌어가는 인간이 중요하다. 오래전에 읽었던 어떤 정치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제도나 기술의 진보만으로 민주주의의 완성이 저절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환상이다. 숙명적으로 남는 정치의 마지막 어려운 문제는 역시 그것을 영위하는 인간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일부 군의원을 둘러싼 의혹들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사실 자체가 민망하고, 그 민망한 일을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일 또한 민망하다. 세상에 뭐 해먹을 짓이 없어서 지방의회 의원 놈 노릇하냐고 따질 시기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지역민의 신뢰를 잃은 지방의회 의원의 값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다. 주민이 쥐어준 칼을 멋대로 잘못 쓴 죄의 대가다. 스스로 스타일을 구기지 말라.

젖먹이는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이유(離乳)를 단행해야만 스스로를 알고 자기 처벌의 결단을 내리게도 된다. 떳떳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의식을 갖는 문화권이 서양인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문화권은 유교문화권의 동양이다. 부끄러움의 문화는 외면적인 강제의 힘에 밀려 선행으로 나아가며 남에 대한 반응이다.

치격(恥格)이란 단어를 떠 올린다. 인격이라는 표현보다는 어느 모로나 신선하게 들리는 恥格은 부끄러움을 아는 의식의 격을 뜻한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것이 가장 큰 부끄러움인 것이다. 내성적인 수줍음이 아닌, 가책의 부끄러움이 되찾아지지 않고선 우리의 불행은 되풀이될 뿐이라는 생각을 거듭 확인해본다.

보다 좋은 거창군은 보다 능력 있는, 보다 훌륭한 군의원을 그 구성원으로 가질 때만 기약된다. 군 의회 무용론은 제도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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